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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전세사기특별법 빈틈 막아준 조례의 '역설적 빈틈'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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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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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실태조사를 통해 실제 필요한 지원을 알아내는 건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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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특별법'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반영할 수 없다는 건 결정적인 한계다. 이런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건 지자체 조례다.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전세사기 피해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지자체의 조례는 전세사기 피해를 통제하고 지원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또 조례엔 빈틈이 없을까.

'전세사기피해지원을 위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특별법ㆍ2023년 6월)'을 시행한 지 1년 4개월째. 여야가 특별법을 만들긴 했지만, 수만명에 달하는 전세사기피해자들을 전부 구제하진 못했다. 6개월마다 개정하겠다던 여야 정치권의 약속도 2023년 12월이 아닌 2024년 8월에야 지켜졌다. 그 사이 광역자치단체나 기초자치단체는 조례로 그 빈틈을 메우려 했다. 효과는 있었을까. 더 채워야 할 점은 없었을까.

9월 6일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도로 열린 '전세사기 피해에 대한 지자체별 대응 사례 공유회'에서는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의 성과를 짚었다. 주목할 점은 이날 논의의 중심이 '특별법'이 아닌 '조례'였다는 점이다. 특별법이 챙기지 못한 부분까지 깊숙이 들어간 조례가 숱했기 때문이다.

■ 조례 역할❶ 지역별 대응 = 전세사기의 피해는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다. 20ㆍ30대 피해자가 80% 이상을 차지한 건 대동소이하지만, 피해 주택 유형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하거나 구제하는 덴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수원시에선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사례가 적지 않았다.

반면, 관악구에선 다가구주택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다세대 주택과 다가구 주택의 차이는 호실별 주인이 '동일인'인지 여부다. 호실별로 주인이 따로 있는 다세대 주택은 전세사기에 얽혀 경매 등으로 넘어가도 해당 호실의 문제만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다가구 주택은 다르다. 호실별 주인이 '동일인'인 다가구 주택은 해당 호실의 문제가 곧 전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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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간파한 관악구는 다가구주택의 피해사례를 좀 더 세밀하게 짚었다. 피해 신청이 접수된 다가구주택에서 신고를 하지 않은 가구에 일일이 '전세사기 피해 안내문'을 보냈다. 그 결과, 안내문을 받은 300여 가구 중 60여 가구가 피해 신청을 제출했다. 관악구는 이들을 상대로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도 조사했다.

가장 비중이 높았던 3가지 요청은 소송 수행 경비 지원 요청(36.0%), 이사비 지원(18.0%), 집수리비 지원(8.0%)이었다. 관악구는 이런 요청을 지원할 근거를 조례를 개정해 만들 계획이다. 이는 특별법보다 더 세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례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 조례의 역할❷ 영속성 = 이와 함께 조례는 전세사기특별법의 단점을 메워주는 역할도 한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일종의 '한시법'으로 유효기간은 2년이다. 2023년 6월 1일 제정했으니, 2025년 6월이 지나면 특별법은 효력을 잃는다.

물론 특별법의 기간을 연장하면 되지만 어찌 됐든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면 특별법의 연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영속적 성격'을 갖고 있는 조례는 보완 역할을 할 수 있다.

권지웅 경기도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장은 "2024년 상반기가 지나도 전세사기 피해 신청 건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부칙으로 피해자 안정을 위한 조치는 법 존속기간과 관계없이 유지한다고 돼 있지만 어떤 공무원이 따르겠나"라며 특별법의 짧은 적용 기간과 조례 내 지자체 예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조례의 역할❸ 지역별 주택관리 = 조례의 역할은 또 있다.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관리해주는 법적 역할이다. 사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건 경제적 위기만은 아니다. 전세사기를 치고 집주인이 사라지면 '공용부분'을 관리하는 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계단을 청소해야 하는 것처럼 단순히 삶의 불편을 낳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동주택의 외장재가 떨어져나가 건물 균열이 심해질 수 있다. 화재 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테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주거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거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조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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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균 박사(전 주택관리공단 사장)는 "전세사기 피해에 휘말려 건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집주인이나 임대인의 허락이 없더라도 지자체가 직접 건물을 바꾸는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며 "관련 조례를 만들어 지자체가 개입할 범위를 넓혀야 주택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지자체는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전세사기 피해를 조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지자체가 실태조사를 제대로 할수록 전세사기피해특별법 개정안에 적용할 수 있는 사안도 많아진다. 그렇다고 조례가 모든 걸 통제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례를 아우르는 '특별법'이란 법망이 튼실해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대출금과 이자를 갚으며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국회와 정부는 너무 멀다.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약속'한 법이 현장의 소리를 더 잘 담아내야 하는 이유다. 조례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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