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들들 성적 학대" 주장 수용한 검사장, 법원에 재심 권고
"진보 성향 LA검사장, 재선 노린 정치적 결정" 비판도
1992년 재판 당시의 에릭 메넨데즈(왼쪽), 라일 메넨데즈 형제 |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1989년 미국에서 친부모를 총으로 쏴 모두 숨지게 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형제가 재심을 통해 가석방으로 풀려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로스앤젤레스(LA) 지방검사장 조지 개스콘은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약 35년간 구금된 라일 메넨데즈(56)와 에릭 메넨데즈(53) 형제에 대해 재심을 권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스콘 검사장은 "나는 법에 따라 이들의 가석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왔고, 그렇게 권고할 것"이라며 "이는 가석방 가능성이 없는 종신형을 철회하고 살인죄에 대한 형을 다시 선고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다시 LA 고등법원에 넘겨져 판사의 최종 판단을 받게 됐다.
지역 일간지 LA타임스 등 미 언론은 그동안 메넨데즈 형제 측이 여러 차례 가석방 탄원을 해 온 데다 이번에 검찰의 공식 권고가 이뤄진 만큼, 판사 역시 가석방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24일(현지시간) 메넨데즈 형제 사건 관련해 재심 권고 결정 발표하는 조지 개스콘 LA 지방 검사장 |
메넨데즈 형제는 각각 21세, 18세였던 1989년 함께 산탄총을 구입한 뒤 LA 베벌리힐스의 자택에서 아버지 호세 메넨데즈와 어머니 키티 메넨데즈를 모두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배심원단 재판에서 유죄 평결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숨진 호세 메넨데즈는 RCA 레코드 등의 고위 임원을 지낸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물이었고, 형제가 함께 친부모를 살해했다는 기소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메넨데즈 형제는 범행 자체는 인정했지만, 아버지가 수년간 자기들을 성적으로 학대했으며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가 자기들을 살해할까 봐 두려워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아버지인 호세 메넨데즈가 이들 형제를 성추행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형제가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한 것이라고 맞섰다.
이 사건은 1996년 재판이 모두 끝난 뒤에도 여러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을 통해 다뤄졌는데, 특히 지난달 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괴물: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가 인기를 끌면서 미국에서 다시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개스콘 검사장은 이 사건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공언했고, 메넨데즈 형제의 친척 20여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들의 석방을 요청했다.
또 지난해 피콕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 라틴계 보이그룹 메누도의 전 멤버 로이 로셀로가 자신이 10대였을 때 당시 계약 관계였던 레코드사 임원 호세 메넨데즈에게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내용도 메넨데즈 형제 석방 여론에 힘을 실어줬다.
아울러 어머니인 키티 메넨데즈가 아들들에 대한 남편의 학대를 방조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친족의 증언도 나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재선을 노리는 개스콘 검사장이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해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LA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에서는 지방 검사장을 지역 주민들의 선거로 뽑는다.
키티 메넨데즈의 오빠인 밀턴 앤더슨 측 변호사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검사장이 자신의 정치 경력을 다시 살릴 기회를 얻기 위해 (이 사건의) 사실을 조작했다"고 비판했다.
개스콘 검사장과 경쟁하는 네이선 호크먼 후보도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재심 권고 결정을 내린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개스콘 검사장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스콘은 호크먼에게 30%포인트 차이로 뒤지고 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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