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폐업 증가하며 외상값 못 받은 자영업자 늘어
1800만원 미수금 못 받아 신용불량자 전락 사례도
“폐업지원·채무조정으로 자영업자 출구전략 마련해줘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폐업한 매장 문틈에 수도요금 청구서가 꽂혀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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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허모(49) 씨는 거래처 15곳으로부터 약 50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허씨가 매일 일어나서 하는 일은 “사장님 오늘은 꼭 입금해주세요”라는 문자 돌리기.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폐업하는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아예 연락이 안되는 업체도 생겨났다. 허씨는 “‘나홀로소송’을 해서 지급명령서를 받았고, 신용정보회사까지 찾아가 미수금을 받아 달라고 의뢰를 해봤지만 꿈쩍도 않는다”며 “결국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서 쓰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높아지면서 물건을 납품하고 제 때 물건 가격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위 ‘미수금(未收金)’ 사태다. 국세청이 공개한 ‘최근 10년간 개인사업자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음식업은 79만 곳 사업장 가운데 15만 곳이 문을 닫았다. 폐업률은 19.4%였다. 음식업 폐업률은 지난해 2.4% 포인트 상승해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폐업의 이유는 다양하나 허씨의 사례처럼 거래 업체가 폐업할 경우 남겨진 ‘미수금’은 회수가 어렵다. 미수금은 자금경색을 낳고, 이는 폐업 도미노로 이어질 공산이 있다.
경상남도 김해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허모(49)씨는 미수금을 해결해 달라고 식자재를 납품하는 식당에 일주일에 한 번씩 문자를 보냈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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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금은 외상거래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흔한 거래 방법이다. 매 거래마다 결제와 세금계산서 발행이 번거로우니 한 달 치를 몰아서 결제하는 식으로 미수금이 쌓인다. 식당 뿐 아니라 의류 도·소매, 자동차 정비소, 함바식당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경기가 좋아 현금 흐름이 원활하다면 대금 결제에 문제가 없지만, 최근 처럼 폐업률이 높은 상황에선 때로 편리를 위해 사용하던 미수 거래가 시한폭탄이 돼 돌아오기도 한다.
경상남도에서 한식뷔페를 운영하는 김모(68) 씨는 건설 하청업체와 거래 관계를 맺었다. 2022년 12월부터 2023년 2월까지 3개월 동안 식사를 제공했으나, 그에 따르는 식비 1800만원은 받지 못했다. 내용증명을 보내 소송을 하겠다고 압박했으나 미수금 정산은 1년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씨는 “돈을 못 받으면 식자재 외상도 못 갚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결국 지난해에는 가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이어 “이미 신용불량자 신세가 돼 폐업할 돈도 없어 가게만 닫아 놓은 상태다. 미수금까지 매출로 잡혀버리니 매출까지 부풀려져 돈은 못 받았는데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정말 죽을 판”이라고 토로했다.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배모(48) 씨 또한 팬데믹 이후인 2022년 건설 협력업체로부터 500만원가량을 2년째 못 받고 있다. 배씨는 “독촉 문자도 보내고 사기로 경찰서에 고소도 했지만 (채무자는) 대금을 주지 않았다”며 “원체 이런 일이 잦다보니 대금의 3분의 2는 못 받을 돈이라고 생각하고 사는데, 미수가 천만원 단위가 되면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수금을 정산 받지 못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는 자영업자들은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을 기점으로 10건 중 7건은 미수금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2019년 본안 소송 190건 중 미수금 관련 소송은 128건(67.4%)였는데,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상은을 입은 2022년에는 본안 소송 210건 중 165건(78.6%)으로 증가했다.
폐업을 앞둔 한 점포의 모습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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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미수금은 결국 사인간 거래라 민사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돈을 받지 못하면 내용증명을 보내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지급명령을 신청하게 된다. 채무불이행자 명부 등재나 재산명시 신청, 채권압류 추심명령 등으로 돈을 지급하지 않는 거래선을 압박 할 수도 있다. 소송으로 가게 되면 최소 6개월 이상이 소요되는데, 대다수 민사 소송이 그렇듯 진행은 더디다. 그러다 결국 수금을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추심 대행을 위해 신용정보회사를 찾아가는 사례도 있다. 한 신용정보회사 관계자는 “2022년 대비 2023년에 민사채권과 상거래 채권 의뢰가 12% 정도 늘었다”며 “잔금을 못 받은 인테리어 업체, 건설현장에서 시공사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한 미장업체 등 의뢰 업종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악성 미수금’은 자영업자 연쇄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장사가 안 돼 폐업한 자영업자로부터 미수금을 정산 받지 못하면 쌓이고 쌓여 악성 미수금이 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업장에 줄 돈을 못 주는 동요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경기 악화가 길어지면서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100만명에 가까워지니 자영업자끼리 거래에서 리스크 관리가 안 돼 그대로 터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폐업지원 등 출구전략 마련해 좀비 자영업자 정리해야”지난해 자영업자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이 80%에 육박하는 가운데 자영업자의 퇴직금 격인 노란우산공제 공제에서 납부금을 담보로 대출한 금액도 3년 새 3배 이상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벼랑 끝에 다다른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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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일자리 격차 해소특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은 “자영업자에게 폐업을 지원해주고 채무를 조정해 출구전략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자영업자 구조조정을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유연한 일자리를 창출해 자영업자들이 임금 근로자로 흡수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더 큰 충격이 미쳤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권 원장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업제한, 거리두기 정부 정책을 펼쳤는데, 이로 인해서 자영업자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됐다”며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영업자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했다.
권 박사는 “지금 자영업자 위기는 당시 정책 실패의 산물”이라며 “자영업자들의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앞으로 신용불량자나 실업자가 늘어날텐데, 이런 비용이 사회 안전망 비용으로 돌아와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봤다. 지금이라도 자영업자에게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이후 더 비싼 고지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권 박사는 “한국은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 비중이 OECD 7위를 기록할 정도로 자영업 과잉 상황”이라며 “폐업지원 등은 일종의 구조조정 비용으로 남은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폐업 지원은 소모적 비용이 아니라고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들이 임금 근로자로 편입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만들어 쓸만한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구조개혁도 동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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