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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장난하듯 딥페이크, 범죄 늪에 빠진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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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도 죄의식 없이 사진 합성

딥페이크 성범죄 80%가 10대

조선일보

중학교서 딥페이크 예방 교육하는 경찰관 - 지난 8월 대구 수성구 시지중학교에서 경찰관이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음란물을 만드는 것도 성범죄가 된다는 내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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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지역의 한 중학교를 다니는 A군은 지난 8월 텔레그램으로 딥페이크 업체를 찾아 여성 담임 교사의 사진을 건넸다. A군은 담임 교사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달라고 요구하며 가슴 크기, 신체 부위 특징, 세부 자세 등과 관련한 ‘옵션’까지 요구했다. A군은 교내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것은 물론, 각종 표창장·모범상을 받은 모범생이었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담임 교사의 신고로 경찰 수사를 받는 성범죄자 신세로 전락했다. A군은 “신기해서 호기심에 범행했다”고 진술했지만 강제 전학은 물론,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찰청은 올해 1~10월 검거된 딥페이크 성범죄자 474명 중 10대가 381명(80.3%)이라고 25일 밝혔다. 사춘기에 호기심과 욕구가 왕성한 10대 학생들은 “정말 합성이 되는지 궁금해서” “그냥 한번 그런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경찰에 진술한다. 피해 여성들은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가해 학생들은 딥페이크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 없이 그냥 ‘놀이’처럼 여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10대 피의자들은 딥페이크가 엄연히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고 했다.

지난달 국회가 개정한 성폭력처벌법을 보면 딥페이크 영상을 단순 소지만 해도(소지·구입·저장·시청죄)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범죄 구성 요건에서 ‘반포 등을 할 목적’이라는 문구를 삭제, 유포 목적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제작자를 처벌(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10대 학생들이 죄의식 없이 딥페이크 범죄를 저질렀다간 전과자로 평생 낙인찍혀 패가망신할 수 있다”며 “일선 교사와 학부모들이 범죄의 심각성을 단호하게 교육시킬 때”라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경찰청은 경찰이 딥페이크 집중 단속에 나선 8월 28일 이후 하루 평균 10건의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접수된다고 밝혔다. 대구경찰청은 지난 8월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사진과 나체 상반신을 합성한 허위 영상물을 제작한 뒤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해 전시한 중학생을 검거했다. 광주경찰청은 또래 여학생 29명의 사진으로 허위 영상물을 제작한 고등학생을 검거했다.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을 용돈 벌이에 활용했다가 구속된 10대도 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지난 16일 동창생과 교사 등 지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판매한 고교생 B군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B군은 지난 6월 소셜미디어에 ‘근친, 지인, 연예인 합성, 능욕 판매’라는 광고 게시물을 올린 뒤 연락해오는 이들에게 텔레그램을 이용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건당 1000~2000원에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B군은 116건을 판매해 30만~40만원을 챙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돈을 벌려고 딥페이크 제작법을 배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활용한 10대들에게 인공지능(AI) 기술은 너무 재미있는 ‘놀이’처럼 여겨진다”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각보다 기술이 선사하는 신기함과 짜릿함이 앞서는, 일종의 ‘윤리 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한 학교전담경찰관(SPO)은 “남자 중학생 3명이 요새 인공지능(AI)으로 영상물을 만들 수 있다는데, 우리끼리 해보자고 모여서 서로의 얼굴을 음란 영상에 합성하는 황당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한 교사는 “우리 사회가 AI의 첨단·혁신성, 그로 인한 경제 발전 논리만 강조한 탓도 있다”고 했다.

호기심에 딥페이크 영상 제작을 의뢰하다가 협박을 당해 금품을 갈취당하거나, 아예 딥페이크 제작 일당의 공범이 되는 등 2차 범죄의 수렁으로 빠지는 청소년도 늘어나고 있다. 경찰은 딥페이크 제작 업체들이 범죄 조직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악질 업자들은 호기심에 딥페이크 제작을 의뢰하는 청소년들에게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네가 딥페이크 성범죄자임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해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주변 지인의 인적 사항과 사진을 추가로 요구해 새로운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하기도 한다. 경찰 관계자는 “딥페이크 음란물 단순 소지뿐 아니라 제작 공범까지 되는 꼴이라 단순 호기심이 인생 파산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민고은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딥페이크 음란물은 실제 촬영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서,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불법 촬영물과 동일한 수준”이라며 “딥페이크 성범죄가 엄연히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중범죄임을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중·고교 교육 과정 정보·도덕 과목에 디지털 시대 윤리와 관련한 학습 목차가 있긴 하다. 그러나 교과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되진 않는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개정 교육 과정에 ‘디지털 윤리’ 같은 과목을 신설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 일선 교사는 “10대의 디지털 친화력은 기성 세대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고, 인간 관계도 온라인 중심으로 맺는다”라며 “AI 시대의 인간성을 비중 있게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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