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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일본 여당 자민·공명, 12년 만에 과반 흔들… 위기의 이시바, 혼돈의 일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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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 "자민·공명당 과반 확보 불확실"
입헌민주당 약진에 셈법 복잡해진 일본 정치
이시바, 정권 유지 위한 연정 구조 고민할 듯
한국일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총선 전날인 26일 밤 도쿄 시내 유세 현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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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27일 실시된 총선(중의원 선거)에서 '여권 과반(중의원 전체 465석 중 233석)'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과반 의석 붕괴는 2012년 12월 총선 이후 12년 만이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최대 위기를 맞은 이시바 총리는 정권을 유지하려면 연립정권을 다시 짜야 한다.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의석을 대폭 늘리며 이시바 정권의 최대 위협 세력으로 부상했다.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개표가 진행 중인 이날 오후 10시 기준 자민·공명당은 전체 465석 중 129석을 확보했다. 반면 야권은 152석을 획득했다.

NHK가 이날 오후 8시 투표 종료 직후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은 153~219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21~35석에 그쳤다. 두 당이 출구조사 예측 중 최대치(254석)를 확보하면 이시바 내각은 일단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치(174석)에 그칠 경우 총선 전 의석수(288석)보다 100석 넘게 잃고 연립 정당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정권 상실 위기에 처한다.

다른 일본 언론들도 자민·공명당 과반 붕괴를 예측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 의석수가 크게 줄어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자민·공명당 과반이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아사히신문도 "자민·공명당 예상 의석수는 210석으로, 과반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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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요시히코(왼쪽) 일본 입헌민주당 대표가 15일 도쿄 외곽 하치오지시에서 총선 유세를 하고 있다. 하치오지=교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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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입헌민주당은 활짝 웃었다. 오후 10시 개표 기준 96석을 확보했다. NHK 출구조사에서는 129~19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는데, 최대치를 차지하면 총선 전 98석에서 93석이나 늘어나게 된다. 입헌민주당이 세 자리 의석수를 확보하게 된다면 2012년 12월 총선 이후 12년 만이다.

출구조사 예측대로 자민당이 최소치(153석)를, 입헌민주당이 최대치(191석)를 차지하면 원내 1당이 자민당에서 입헌민주당으로 바뀌게 된다. 요미우리는 "입헌민주당이 2012년 이후 유지된 자민당 1강 시대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민당의 부진은 '계파 비자금 스캔들'로 시작된 정권 심판론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자민당 계파 일부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거둔 지원금을 비자금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민당 지지율은 추락했다. 검찰 수사로 이어졌고,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물러나고 이시바 총리가 지난 1일 취임했다.

중의원 조기 해산 승부수를 던진 이시바 총리는 비자금 스캔들 비판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연루 의원 46명을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하거나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자민당 심판 분위기를 뒤집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총선이 며칠 남지 않은 23일 비자금 스캔들로 공천을 배제한 후보 지부(한국 지구당에 해당)에 공천 후보와 같은 액수의 선거 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자금 스캔들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고물가 등 경제 문제도 여권의 패인 요소로 꼽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2%를 넘는 고물가가 계속되고, 사실상 실질임금이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일본 국민의 불만이 컸다. 이시바 정권에 실망한 민심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다. 아사히가 지난 21일 공개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3%에 그쳤다. 특히 '지지하지 않는다'(39%)는 응답이 6%포인트나 많을 정도로 민심은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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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이 27일 실시된 총선 투표일에 도쿄의 한 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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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 일본 정치는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개표가 진행 중이지만 자민당을 비롯해 단독 과반을 차지하거나 압승이 예상되는 정당이 보이지 않아서다. 입헌민주당이 약진했지만 최대치를 얻는다 해도 단독으로 정권 교체는 불가능하다. 일본유신회(NHK 출구조사 결과 28~45석)와 국민민주당(20~33석), 공산당(7~10석) 등 다른 야당과 힘을 합치면 정권 교체는 가능하나 정치 성향 차이가 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합종연횡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계의 시선은 이시바 총리의 선택에 쏠리게 됐다. 정권 연장을 위한 길을 모색할지,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날지 선택해야 한다. 국민민주당과 일본유신회가 자민당 연립정권에 합류할 경우 이시바 총리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공명당은 일본유신회와의 연대에 일찍이 선을 그어 왔다.

자민당 내 총리 책임론이 제기될 경우 '이시바 흔들기'가 시작될 수 있다.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이시바 총리의 경쟁자였던 극우 성향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장관에게 "(이시바 총리가) 1년 안에 물러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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