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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한총련 친북몰이’ 뒤편 경찰 성폭력 고발…공권력 변화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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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96년 11월21일 ‘공권력에 의한 여대생 성추행 고소·고발’ 관련 기자회견이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려, 연세대 범민족대회 진압 과정에서 경찰에 성추행 피해를 당한 이들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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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13일, 인권단체,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총련 강경진압 및 탄압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비공개 기자회견을 갖고 연세대 범민족대회 강경진압 과정에서 “상당수의 대학생들에게 집단적·조직적인 폭행과 성추행이 가해졌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시 피해 학생들은 공포에 시달렸고, 대인기피증세까지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피해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 신뢰할 만한 언론사의 기자들만을 초대해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증언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이 자리에 어렵게 나온 학생들도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23살의 남학생 박아무개씨는 “전경이 곤봉으로 얼굴을 때려 앞니 4개가 부러졌다”고 증언했다. 시위와 무관했던 홍익대 1학년 남학생은 자신이 계속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다” 연행되었음을 진술했지만, 구타를 당해야 했다. 이렇듯 1차 조사 결과 108건에는 폭언, 폭행, 최루탄 피해, 수사 과정에서 허위자백 강요 등이 나타났고, 소지품과 돈을 빼앗긴 경우도 확인되었다. 연행되어 조사받는 3일 내내 폭행을 당해서 나중에는 구토증세를 보인 경우도 있었고, 경찰이 쇠파이프를 쥐여주고 “사진을 찍은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증언한 일도 있었다.







남학생은 폭행, 여학생은 성추행·성폭언





남학생들에게는 폭행과 폭언이 가장 심한 인권침해였다면, 여학생들에게는 성추행과 성폭언이 연행에서 전 조사 과정에서 자행되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108명 가운데 여학생이 70명이었는데 이 중 41명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조사에서 답했다. 23살의 여학생 정아무개씨는 “20일 종합관에서 연행될 때 전경이 가슴과 엉덩이를 만졌다. 팔로 뿌리치자 곤봉으로 머리를 때렸다. ‘588이나 가라, 정신대로 보내야 돼, 김정일 기쁨조나 해라. 밑을 도려내겠다. 우리 차에 타면 다 강간해 버릴 거다’ 등의 성폭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또 정씨는 “밤 12시경 강남경찰서 강당에 수용되어 있을 때, 누군가 ‘눈을 감고 다리를 벌리고 앉으라’고 명령했다. 몇분이 수시간이나 지난 것처럼 길었고, 수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울먹였다. 이와 같이 남성 전경들에 의한 성추행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정씨와 같이 성추행과 성폭언을 당하고도 항의 한번 못했다. 연행된 여학생들은 20대 초반의 여학생들이었는데, 이런 인권침해를 당하고 정신적 충격이 심해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도 휴학계를 내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지만, 대다수의 언론은 외면했고, 일부의 언론들에만 보도가 나갔을 뿐이었다. 폭력적인 한총련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강조되고, 친북좌경 단체로 낙인 찍힌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여 탄압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던 때였다. 공권력, 특히 경찰의 인권침해는 묵인되는 분위기였다. 나아가 집시법(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악하여 집회 장소를 제한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까지 나오고, 폭력시위 진압에 실탄을 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던 상황이었으니 우리가 조사해서 발표한 경찰 인권침해는 애써 외면되던 분위기였다.



이 문제가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실에 전화를 했다.



“의원님을 만나서 연세대 사건 관련해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다음날 전화가 와서 조사 자료를 갖고 나갔다. 성신여대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조사 자료와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건넸다.



그해 10월9일,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회 내무위(현재의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의원은 위의 정씨의 증언 등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추 의원은 “인권운동사랑방이 제공한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의 이 발언으로 국회는 벌집을 쑤신 듯이 난리가 났다.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국회의원의 품위를 주로 공격했다. 추 의원이 여학생이 성추행당하면서 들었던 성폭언을 그대로 옮긴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추 의원 외에도 같은 당의 유선호, 정균환, 이기문 의원 등이 이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유 의원은 우리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당시 연행된 학생 108명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폭행 86건, 성추행 41건, 부상 21건, 폭언 63건,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과 정신적 후유증 10여건 등 모두 290건의 인권침해 사례가 있다”며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겨레

1996년 8월2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연세대 범민족대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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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세력 도와준다던 이재오 의원





이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반박은 군색했다. 신한국당은 고위당직자회의를 가진 뒤 김철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추미애 의원의 발언은 친북 폭력시위로 인해 경찰이 죽고 다친 한총련 사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균형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신한국당의 이재오 의원(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일부 정치권이 한총련 사태를 왜곡시키고 공권력을 약화시켜 이적 세력을 도와주고 있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이후 이 사건 피해자들은 경찰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였다. 형사 소송은 대체로 기각되었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민사 소송에서는 일부 사실이 인정되기도 했다.



이런 폭로에 대해서 한사코 부인하던 경찰은 그 후 1999년 3월부터 집회, 시위 현장에 여경 기동대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집회, 시위 진압과정마다 성추행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2000년 이후에는 집회, 시위 현장에서 여성 시위자를 연행할 때에는 당연히 여경이 투입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집회, 시위 현장에서의 성추행 논란은 점차 사라져 갔다. 연세대 사건은 공권력을 행사할 때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고, 결국 인권단체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무모한 도전, 인권영화제





1996년은 우리나라에 국제영화제가 시작된 해였다. 그해 9월13일부터 21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까지 24년째 열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첫해만 9월에 열렸던 부산국제영화제는 2회부터는 매년 10월에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하게 개막한 뒤, 11월2일 제1회 인권영화제가 이화여대에서 개막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 지역의 모든 극장을 활용한 영화제였지만, 인권영화제는 극장을 구할 수 없어서 학교로 갔다. 대학교도 연세대 사건 이후 모든 외부의 행사를 불허하는 추세였다. 학교 잡기도 쉽지 않았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996년 9월 ‘인권하루소식’ 창간 3주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뭐 하나 마땅한 게 없었다. 기념식을 하는 것도, 후원주점을 하는 것도 모두 마땅치 않았다. 그때 1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 온 서준식 대표가 아이디어를 냈다. 샌프란시스코에선가, 시카고에선가 인권영화제를 하는 것을 봤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인권영화제를 하면 어때?”



나도 참신하게 인권영화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한다는데, 우리는 좀 소박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준식 대표는 런던에 연락을 취했다. 런던 앰네스티 본부에는 류은숙 활동가가 나가 있었다. 인권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인권운동사랑방의 방침에 따라서 류은숙 활동가를 앰네스티 본부에 파견해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배워오게 했던 차였다. 류은숙은 즉각적으로 반대 의사를 보내왔다.



“1년에 영화 한편도 안 보는 사람들이 무슨 영화제냐. 못한다.”



그럼에도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영화제를 준비해 들어갔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새롭고도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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