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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뉴딜 정책’으로 대공황 극복한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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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24∼29일 미국에선 역사상 최악의 주가 폭락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검은 화요일’로 불리는 29일에는 1640만 주가 매도되며 기록적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이날 이후 미국 경제는 급격하게 휘청거리기 시작했지만 당시 공화당 정부는 ‘그대로 놔두면 자본주의 시장이 알아서 회복할 것’이라며 금융 시장 개입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결국 때를 놓쳤고 1930년대 대공황이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동아일보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4선을 기록하며 최장기 재임(1933∼1945)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1882∼1945·사진)은 ‘세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기의 시대를 이끈 인물입니다. 특히 미국이 대공황의 파고를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한 ‘뉴딜 정책’은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힙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뉴욕의 부유한 사업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빈민층 봉사를 하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덕분에 가난한 이들의 실상을 알게 됐습니다. 이는 이후 그가 정책을 수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28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나 이후 발병한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당시 소아마비는 완치가 어려운 병이었지만 재활 치료를 받아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됐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정치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후 국민들은 그를 장애를 극복한 강인한 인물로 평가하게 됐습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뉴욕 주지사를 거쳐 1932년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리고 대공황으로 붕괴 직전인 경제와 급증한 실업률에 맞서 뉴딜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공공사업 프로젝트, 은행 개혁, 노동자 권리 강화, 농업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진 뉴딜 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안정 및 사회적 안전망 강화라는 성과를 거두면서 오늘날까지도 미국의 복지 기반을 다진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1945년 4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목전에서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물론 사후 뉴딜 정책이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두 역사적 위기 속에서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결단력은 오늘날에도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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