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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삶-특집] "예쁜 얼굴이어서, 룸살롱 아가씨 대신 널 뽑았다"…성폭력 횡행(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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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2차 성폭력 가해하고도 사과나 반성 없는 사람들 부지기수

힘의 불균형으로 성폭력 발생…엄정한 법치로 가해자들 처벌해야

[※ 편집자 주= 이번 특집 기사는 2022년 [삶] 인터뷰를 시작한 이후 성폭력과 관련해 인터뷰이들이 언급한 내용만을 발췌해 별도로 묶은 것입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윤미숙 교사노조연맹 부위원장
[촬영 김연수]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성폭력은 주로 힘(권력)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한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성적(性的) 영상물 불법 촬영 등 성폭력을 해도 힘없는 상대방이 문제 삼지 못할 것이라는 가해자의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현재의 학교 시스템상 여자 선생님이 뭐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을 학생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이나 농장에서 고용주가 이주 여성 노동자를 성폭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에서 온 이들 노동자에게 사장님은 봉건시대 군주 같은 권력을 갖고 있다.

비정규직 여직원을 뽑아 놓고는 "룸살롱 아가씨를 데려오려다 네가 예뻐서 뽑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자기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서실의 말단 여직원에게 음란 메시지를 보낸 것도, 시인 고은이 문학 후배들 앞에서 성적인 행위를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엄정한 법치다.

법치가 안 되는 사회에서는 1차 가해자뿐 아니라 2차 가해자들까지 벌떼처럼 몰려들어서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간다. '꽃뱀'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런 가해 행위를 하는 사람 중에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여성 인사도 적지 않은데, 자신을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 수호자로 포장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런 현상은 자주 일어난다.

다음 내용은 연합뉴스가 2022년 9월부터 진행한 [삶] 인터뷰 가운데 인터뷰이들이 성폭행과 관련해 언급한 부분만 발췌해 묶은 것이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윤미숙 교사노조연맹 부위원장
[교사노조연맹 촬영]



◇ 윤미숙 교사노조연맹 부위원장

-- 초중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성희롱하는 일이 있나.

▲ 자기들끼리 교실에서 선생님의 속옷 색깔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는 아이들도 있다. 여자 배우의 가슴 크기에 대해서도 말하면서 시시덕거린다. 자기들끼리 몰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생님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

▲ 선생님이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라고 추궁하면 "선생님한테 한 말이 아닌데요"라는 답변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추궁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어서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학생들의 성희롱 유형으로 다른 것이 또 있나.

▲ 임신한 여선생님이 수업 중인데, "00를 해서 임신했다"면서 성적(性的)으로 모욕하는 학생들이 있다. 선생님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부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이런 짓을 한다.

-- 선생님을 성추행하는 학생도 있다고 하던데.

▲ 지나가면서 슬쩍 선생님 엉덩이나 등, 팔을 툭 치거나 부딪히는 학생들이 있다.

-- 선생님에 대한 서술형 평가에서 선생님을 성적(性的)으로 모욕하는 일도 있다고 하던데.

▲ 세종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술형으로 선생님에 대해 평가하라고 했는데, 성희롱하는 내용을 적었다. 익명 평가여서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른다. 컴퓨터로 작성해서 입력하는 것이니 필체 확인도 불가능하다.

-- 그 세종시 선생님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듯하다.

▲ 선생님은 교육청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상처를 받았다. 교육청은 선생님을 보호하기보다는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취조하듯이 조사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나는 피해자인데, 왜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차 가해를 받은 셈이다. 선생님은 교육청의 이런 조사가 더 견디기 어려웠고, 이때 교단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분은 의원면직으로 교직을 그만뒀다.

-- 학생이나 학부모, 교육청 등이 선생님을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교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락한 것도 원인이지만 그동안 국회, 정부, 단체 등이 지나치게 학생 인권을 강조하면서 교권 보호에는 신경 쓰지 않은 데도 원인이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 보호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학교는 통제 불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직장갑질119 윤지영 대표
[촬영 김민수]



◇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

-- 비정규직 노동자가 성희롱당하는 경우가 많은가.

▲ 비정규직 여성 2명이 한 업체의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게 됐다. 출근 첫날부터 인사부장이라는 사람은 성희롱을 했다. 그는 "내가 룸살롱 아가씨를 뽑으려 했는데, 싫다고 해서 예쁘게 생긴 너희들을 대신 뽑았다"고 했다. 인사부장은 회식 자리에서 이들 여성의 허벅지를 더듬기도 했다. 다른 정규직원들도 이들 비정규직을 성희롱하긴 마찬가지였다.

-- 피해자들은 아무런 대응을 못 했나.

▲ 참다못한 이들은 회사 대표에게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아침 출근 시간에 회사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출입문에 지문인식 시스템이 있었는데, 이들의 지문 기록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출입문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으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입사 3개월 만의 해고였다. 그때 이들은 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초중반이었다.

-- 직장갑질119에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상담 요청이 많이 들어올 듯한데, 어떤 내용들인가.

▲ 여성 외모에 대해 품평하는 경우가 있다. "너 왜 이렇게 뚱뚱하냐?", "살 좀 빼라", "쭉쭉빵빵하다" 등이 그런 내용이다. 상사가 여직원에게 "치마 좀 입고 다니면 안 되느냐"고 하기도 한다. 회식 자리에 가면 회사 대표 양옆에 여직원을 앉히고는 술을 따르게 하는 상사도 있다. 그러면서 "여자가 술을 따라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 성희롱 중에는 눈빛에 의한 것도 있다고 하는데.

▲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람이 있다. 외모를 스캔하듯이 보고, 특정 부위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시선에 의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상 기타 성희롱에 들어갈 수 있다.

-- 직장 상사가 성매매 업소에 간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 직원에게 "너의 남친도 그런 곳에 갔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던데.

▲ 이런 사례로 상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행위는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다. 당연히 남녀고용평등법상 성희롱에 해당한다.

-- 성희롱 여부를 판정할 때 피해자 느낌이 절대적이라고 하던데.

▲ 잘못 알려진 것이다.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만 고려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다고 해서 무조건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객관적 기준으로도 살펴서 판정한다.

-- 성희롱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나.

▲ 사업주가 직원들에게 성희롱하면 남녀고용평등법상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근로자가 성희롱했을 경우 법률상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사내 징계가 이뤄질 수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촬영 이건희]



◇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목사)

-- 고용주들이 이주 여성 노동자들을 성폭력 하는 일이 많은가.

▲ 설문조사를 하면 성폭력 사례가 10∼20% 정도이고, 40%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형은 성희롱부터 시작해서 성추행, 성폭행(강간)까지 있다. 20대 필리핀 여성 노동자가 50대 유부남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사장이 애인이 돼 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했다. 거절을 했는데도 2∼3개월 똑같은 말을 하니 이 노동자는 사장한테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다른 농장으로 옮기겠다는 것인데, 사장은 이를 거절했다. 이후에도 사장의 이런 행태가 지속되자 이 노동자는 사장이 하는 말을 녹음해놨다가 제시했다. 이 노동자는 간신히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 샤워실을 훔쳐보는 사례도 있다고 하던데.

▲ 한 공장건물 2층 기숙사 옆에 샤워실이 있었다. 하루는 한 여성 이주노동자가 일을 마치고 샤워하는데, 샤워실 내 거울 건너편에서 플래시가 터지는 것을 봤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조사한 결과, 그 거울은 반대편의 사장실에서 샤워실을 볼 수 있는 특수 거울이었다. 사장이 샤워실 안을 들여다보고, 사진 촬영까지 한 것이다.

--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성폭행은 허술한 숙소와도 관련 있나.

▲ 이주 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의 80%가 불법 시설이다. 잠금장치가 제대로 돼 있을 리 없으니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고용주들은 그런 공간을 내주고 매월 기숙사비를 받는다. 근원적으로는 고용연장 권한을 사업주에게 주는 현행 고용허가제에 성폭력의 원인이 있다. 사업주가 절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놓고 있으니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 주로 사업주가 성폭행을 저지르나.

▲ 사업주의 아들, 처남 등 가족도 그런 짓을 한다. 공장장, 부장, 과장 등 관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모두가 그런 짓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부가 그런 범법행위를 한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촬영 이건희]



◇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 보육원에서 성폭행도 많이 일어나는가.

▲ 내가 자랐던 보육원에서는 성폭행이 많았다. 지금 내가 말하는 성폭행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아닌 강간을 의미한다.

-- 누가 성폭행했다는 것인가.

▲ 보육원 선배들이 성폭행을 많이 했다. 보육원장, 총무원장, 보육교사가 성폭행하는 일도 있었고, 후원자나 자원봉사자들이 그런 짓을 하기도 했다. 성폭행을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은 보육원 내 선배들이다.

-- 가해자는 주로 고등학생인가.

▲ 중학생도 그런 짓을 했다. 다만, 중학생들은 고등학생들의 눈치를 봤다. 초등학생이 초등학생을 성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 초등학생이 성폭행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내가 자랐던 보육원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자기보다 더 어린 아이를 성폭행한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게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 보육원에서 성폭행이 많이 일어난 이유는.

▲ 한 시설에 70∼80명의 남녀 아이가 모여있다 보니 이런 일이 많이 생겼다.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에 굶주려 있는데, 이런 결핍이 성폭행으로 왜곡돼 나타나기도 했다. 성폭행은 보육원의 문화처럼 생각될 정도로 많았다. 두들겨 맞는 것보다는 성폭행당하는 것이 덜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연쇄 성폭행도 있었다. 한 아이가 성폭행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보육원장, 사무국장이 성폭행했고 다른 아이들도 잇따라 그런 짓을 하기도 했다.

-- 선배들에 의한 성폭행이 많았다면 보육원 원장, 총무, 사무국장 등은 이를 막으려는 조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에 이런 일이 알려지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 후원금이 적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보육원 내 성폭행이 모두 공개되면 거의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성폭행 문화를 조장한 측면도 있었다고 본다. 이런 문화가 유지되면 자기들이 그런 행위를 하더라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 이런 보육원 성폭행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지금도 이런 성폭행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인가.

▲ 내가 보육원에 있었던 시절은 성폭행이 심각한 때였다.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라고 본다. 요즘은 성 개방 풍조 영향도 있을 것이다. 우리 단체 회원이 된 여자 고아 후배들이 있다. 최근에 보육원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성폭행에 관해 물어보면 그런 일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 보육원 내 성폭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보육원은 성폭행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이다. 완전범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조직이 바뀌지 않았고, 구조도 과거 그대로이니 성폭행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원장도 과거의 성폭행을 묵인했거나 성범죄에 가담했던 사람 또는 그의 자식들인 경우가 적지 않다.

-- 경찰은 뭐하나.

▲ 경찰도 보육원과 유착된 경우가 많다. 보육원장과 친하고, 보육원의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보육원 내 어떤 문제가 생기면 경찰은 오히려 지역 유지인 보육원장을 보호하려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재련 변호사
[법무법인 온세상 촬영]



◇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박원순 성폭력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

--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시장 비서실 말단 공무원이었는데, 그가 처음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어떠했나.

▲ 2020년 5월 12일 오후 5시에 피해자가 찾아왔다. 서울시 동료 공무원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본 사건으로 상담 예약이 돼 있었다. 흰색 정장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그는 상당히 긴장돼 있었는데, 마음을 녹여주기 위해 내가 농담을 건넸으나 웃지 않았다. 상담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녀가 다른 피해가 있다고 했다. 피해자는 박 시장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를 디지털포렌식 하기 위해 사설업체에 자신의 핸드폰을 맡겼다고 했다. 우리 사무실에 오기 전날에는 서울시 간부에게 박 시장이 보낸 음란 문자 내용이 무엇인지를 카톡으로 알려준 상태였다.

--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낸 음란 문자가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 당시 피해자는 박 시장의 핸드폰을 신속히 포렌식 해달라고 수사기관에 강력히 요청했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의 문자 내용을 복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사기관도 가해자의 핸드폰을 압수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는데, 가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중지됐다. 그 후에도 유족 등의 반대로 가해자의 핸드폰은 포렌식 되지 않은 채 영구 봉인됐다.

-- 당시 2차 가해가 심한 수준이었나.

▲ 당시 민주당은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전국 곳곳에 내걸었다. 박 시장이 모두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 상황에서 도대체 그 님의 뜻은 무엇이며,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것인가. 성폭력으로 피소된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음이 밝혀졌는데도 이 당 소속 의원 중 '그것은 잘못됐다'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당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 플래카드만큼이나 엽기적이었던 것이 '피해 호소인' 사태였다. 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이 단톡방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것이 맞는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아직 혐의가 확인된 것이 없다는 논리였다. 명백한 언어적 퇴행이자 사회적 퇴행이었다.

-- 당시 정치인들의 멘트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던데.

▲ "박 시장은 나의 롤모델"(우상호), "박 시장은 가장 청렴한 공직자"(임종석)라는 멘트가 나왔다. 표를 의식한 것인데, 그렇게 하는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공(功)이 있다고 해서 과(過)에 대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하직원을 성적으로 괴롭히고, 사적 노무를 시킨 사람을 롤모델로 생각하고 청렴하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지지자들만을 위한 정치다.

-- MBC 신입 기자 시험에서 피해자 명칭 관련 문제가 나왔다고 하던데.

▲ 당시 그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피해자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지를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피해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불러보라고 조롱하는 것과 같았다. 이를 알게 된 피해자는 "내가 방송국 앞에서 죽으면 (나의 피해 사실을) 믿어줄까요?"라고 했다.

-- 피해자는 2차 가해 관련 사과를 받았나.

▲ 2차 가해를 한 사람 중에는 유명 정치인, 방송인, 현직 검사, 변호사, 가해자의 지지자 등이 있다. 그들 중 자발적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온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국회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기만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피해를 본 사람이 있고, 그 피해자가 생존해 있으며,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할 수 있는 루트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SNS를 통해 사과하는 것은 대중을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를 위한 사과가 아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시인 최영미
[촬영 이건희]



◇ 시인 최영미(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 저자)

-- 시인 고은의 성폭력을 공개한 미투 이후 문단 성폭력이 많이 줄었나.

▲ 내가 문단 모임에 안 나가니 잘 모른다. 그러나 문단 성폭력이 쉽게 근절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문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가부장적 유교문화, 남존여비 문화가 널리 잔존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성추행, 성희롱이 나쁜 행위라는 것은 인지됐지만 성폭력이라는 그 습성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 고은 씨는 본인한테 사과한 적이 있나.

▲ 고 선생이 나한테 직접적으로 사과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는 갖고 있던 직책들을 내려놨다. 그것은 간접적인 사과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으로 본다. 본인이 당당하고 떳떳하면 직책을 내려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평론가, 문인 등이 고은 시인의 추행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침묵했을까.

▲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일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왜 침묵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 '돼지들에게'라는 시에 나오는 그 돼지는 누구인가.

▲ 시의 모델이 된 사람이 불러내서 나갔는데, 아무런 용건이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집에 와서 성경책을 들춰보니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구절이 눈에 확 띄어서 시를 쓴 것이다. 그가 나에게 성희롱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이다.

-- 본인은 문단 내에서 성폭력을 많이 경험했나.

▲ 내가 등단할 때는 성희롱과 성추행이 관행이었다. 내가 무슨 행사를 마치고 나오면 뒤에서 누가 엉덩이를 만지기도 했다. 놀라서 뒤돌아보면 그는 그냥 씩 웃는다. 등단 초기에는 문인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리곤 했는데, 여성 문인을 기생으로 취급했다. 술을 따르라고 하고, 술이 넘치거나 부족하게 따르면 다시 따르라고 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남성의 전화' 이옥이 대표
[촬영 이건희]



◇ 이옥이 '남성의 전화' 대표

-- 아내가 의부증으로 남편을 괴롭히는 일이 있나.

▲ 남편이 사교성이 있어서 부부 동반 모임 등에서 인기가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남자분은 정년퇴직했는데도 여전히 부인으로부터 의심받았다. 그런 의심이 12년간 지속되자 남편은 우리 상담소를 찾았다. 우리는 그분의 아내와도 상담했다. 문제는 상담할 때는 치유가 되는데, 상담 후 1년이 지나면 그런 증상이 다시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신경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 직장에서 남성들이 성희롱을 당해 고민하는 경우도 꽤 있나.

▲ 기혼 여성들이 젊은 남자 직원을 보고는 "힘이 세게 생겼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어서 성희롱에 해당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고민하다 우리 상담소에 연락하게 된다.

-- 신체적 성폭력을 당하는 남성도 있나.

▲ 남자 직원이 결재받기 위해 여성 상사 방에 갔다가 성추행당하는 경우가 있다. 여성 성사가 남자 직원의 몸을 만지는 경우다. 회식 후 여성 상사가 "우리 집에 가서 차 한잔하자"고 해서 억지로 끌려갔다가 실제로 성폭력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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