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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수)

[김택근의 묵언]대통령의 허수아비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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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백척간두의 위기인데도 김건희라는 이름 속으로 모든 현안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성난 민심은 여러 비리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부인을 노려보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 간신이 들끓고, 정치브로커들이 위험한 칼춤을 추며 권력을 조롱하고 있다. 갈피를 못 잡는 권력의 빈자리를 노려 까마귀들이 몰려와 용산 하늘을 덮고 있다. 바람결이 음산하건만 대통령은 그 바람에 나부끼며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다.

임기가 반이나 남았는데도 대통령 권위가 증발해버렸다. 퇴임을 앞둔 김철홍 인천대 교수가 대통령 훈장을 거부했다. 김 교수는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며 “나라를 양극단으로 나누어 진영 간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사람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한탄을 쏟아냈다.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요즘 백성의 소리다. 폐망 직전의 구한말에도 그랬다. 고종이 임금의 권위를 잃고 아무한테나 상을 내리자 백성들이 훈장 받은 자들을 우습게 여겼다. 더러는 훈장을 받으면 녹여서 팔아먹었다. 어쩌면 검증되지 않은 초짜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재앙은 예고되었는지 모른다.

“정치인은 시대정신과 균형감각을 지녀야 한다. 이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단히 민심을 살피고 현실을 직시해야 가능하다. 차를 오래 몰다보면 운전은 머리가 아닌 몸 전체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도 그럴 것이다. 노련한 정치인은 현안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가슴으로 느낀다. (…) 준비된 정치인은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나지 않는다. 정치인은 수없이 민심의 검증을 받고 수없이 자기 검열을 하며 몸집을 불리고 맷집을 키워간다. 민심의 한복판에 서본 사람만이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안다.”(경향신문 2021년 8월7일, ‘좋은 정치인은 갑자기 솟아날 수 없다’)

정치 초보자는 생각보다 위험했다. 도대체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민심이란 이름으로 민심을 왜곡하고 민심이라며 민심에 대들었다. 이미 시효가 지난 이념을 치켜들고, 국민들이 퇴물로 여기는 인물들을 계속해서 중용하고, 여론과는 동떨어진 정책들을 남발했다. 특히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이 공들여 구축한 균형외교의 틀을 허물어버렸다. 외교안보를 책임진 자들이 대놓고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막말을 쏟아내며 북한을 자극했다. 결국 우리는 전쟁의 불길이 언제 한반도로 옮겨붙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가 윤석열 정권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지 모른다. 이제라도 민심에 복종하는 것이 살길이다. 뼛속까지 정치인이었던 양김(김영삼, 김대중)에게 배워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이 대기업의 뇌물을 받고 사법처리에 직면하자 곧바로 국민께 사죄했다. 진실을 가리기에 앞서 자식 이름이 거명되고 추문이 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며, 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은 제 자신의 불찰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아들들이 비리에 연루되자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낀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제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이는 모두가 저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어느 대통령보다 대국민 사과를 빈번하게 했다.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조아렸다. 양김은 누구도 민심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국민들의 의구심과 노여움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세상일은 비슷하다. 아무리 주변 단속을 해도 친·인척 비리는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비리를 척결해야 맑은 정권이다. 원칙과 상식 선에서 단죄해야 국민이 신뢰한다. 양김은 그렇게 해서 퇴임 이후에도 평화로웠다. 어느 정권도 건드리지 못했다.

대통령이 어느 바람, 어느 장단에 춤을 추는지 모르겠다. 떠도는 소문처럼 부인의 치맛바람인지, 간신들이 일으키는 아첨의 손바람인지, 무속인들의 주술인지 알 수가 없다. 부디 국민들의 눈길을 피하지 마라. 허수아비 춤을 멈추고 국민의 손을 잡아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더욱이 초보 정치인이라면 믿을 것은 국민밖에 없다. 그 민심의 둑에 심한 균열이 왔다고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제발 모두의 대통령으로, 국민 속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시간이 없다.

경향신문

김택근 시인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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