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
“1968년생입니다.”
“아직 50이 안됐네요?”
“네.”
“평소에도 남이 질문하면 동문서답하는 게 버릇이에요?”
“아닙니다.”
“아직 50도 안 된 분이 이 어른들 앞에서, 국민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조롱하는 듯한, 국민들 놀리는 듯한 발언을 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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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수행 점검 뒷전 된 국감
전문성 부족할수록 소리 질러
매너부터 배우고 금배지 달길
지난 2016년 12월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묻는 사람은 국회의원, 대답한 이는 대기업 총수다. 국회의원은 당시 1966년생, 두 살 아래인 대기업 총수를 어린애 취급했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대기업 회장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따져 물을 수 있지만, 나이 운운하면서 고의로 모멸감을 준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8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3주간 이어진 국정감사를 지켜보면서 착잡함을 금하기 어렵다. ‘도대체 이분들이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 맞나’ 싶다. 국회가 행정부와 유관 기관의 국정 수행을 점검하고 들여다본다는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는 싸움터가 바로 국정감사장이다.
도대체 여의도에만 들어가면 사람이 변하는 건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국회의원은 드물었다. 품격과는 아예 담을 쌓은 듯하다. 국회의원 중간평가제도라도 마련해서 수준 미달의 의원님을 걸러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래도 ‘옥’과 ‘돌’은 가려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 17개 상임위원회 중에서 특히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문체위에서 가장 돋보인 정치인은 강유정 의원이었다. 강 의원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객관적 자료와 팩트를 근거로 피감기관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대한축구협회의 그릇된 행정을 질타하는 동시에 역대 문체부 출신 공무원들이 옷을 벗은 뒤 축구협회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체육계에선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동안 이런 관행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래서야 문체부가 축구협회를 제대로 감독할 수 있겠느냐는 강 의원의 지적은 백번 옳은 말이었다.
박정하 의원도 좋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꼼꼼한 자료를 바탕으로 피감기관장이 거짓말 한 사실을 잡아냈다. 특히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사석에서 국회의원과 정부를 비난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증거로 녹취 파일까지 틀었다. 그런 사실이 없다며 발뺌했던 체육회장은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 파일이 흘러나오자 “말을 잘못했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승수 의원의 침착한 태도도 귀감이 됐다. 흥분하지 않고 팩트와 숫자를 앞세워 피감기관인 대한체육회의 문제점을 질타했다. 특히 대한체육회가 사유화되고 있다면서 40억원이 넘는 돈을 체육회장 측근의 인건비로 지급한 사실을 밝혀냈다.
전재수 문체위원장의 매끄러운 운영도 수준급이었다. 전 위원장은 다른 의원의 발언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국회의원의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고압적인 태도로 소리만 지르는 의원도 적잖았다. 어떤 선량은 국정감사가 아니라 무슨 웅변대회에 나온 듯했다.
“이분들이 기생인가요. 갑자기 기생집으로 만들어 놓은 거잖아요!”
국악인의 공연 문제를 지적하다가 기생 운운한 이 발언은 최악이었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또 다른 의원은 잇따른 논란에도 3연임을 추진하는 대한체육회장과 4연임을 노리는 대한축구협회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국민 대다수의 정서와는 한참 동떨어진 발언이었다.
국정감사를 지켜보면서 목소리가 큰 의원님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논거가 빈약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 식의 고압적 태도로 일관하는 구시대적 꼰대 의원님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상대방 말은 듣지 않고 핏대를 세우며 “입 닫아”를 연발한다. 과거엔 그냥 넘어갔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국감 현장을 실시간 생중계해서 좋은 점은 국회의원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목소리 큰 게 ‘전투력’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손흥민과 BTS·블랙핑크를 배출한 나라인데 국회의원 수준은 왜 이 모양인가.
18세기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매너’는 공기와 같아서 ‘법’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설혜심 교수가 최근 펴낸 『매너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국회의원들은 매너부터 배우고 여의도에 가길 바란다.
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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