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 대통령의 강렬한 표정과 기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자리 배치가 인상적이다. 한 대표 옆은 배석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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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갈라선 것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동 장면은 기이하다. 선을 그은 듯 직선으로 뻗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일장 훈시가 한창이다. 마치 학생을 상담실로 불러 채근하는 고지식한 선생 같다. 배석한 대통령비서실장은 다른 자리를 놔두고 굳이 한 대표 옆에 나란히 앉았다.
힘의 우열이 도드라졌다. 독대 요청을 한 달이나 뭉개더니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을 혼내는 모양새로 기어이 망신을 줬다. 경청을 기대했건만 서로 앙금이 쌓인 논박으로 흘렀다. 국민 눈높이를 강조해온 당대표에게 흔쾌히 내준 건 제로콜라가 전부였다. 그러고는 원내대표를 만찬에 불러 뒤통수를 쳤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고집을 부렸다.
의례적인 사과 한마디 없었다. 대신 억울한 심정이 넘쳐난다. “집사람이 많이 지쳐 있고 힘들어한다”고 했다. 지켜보기 민망한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정권을 뒤흔드는데도 애써 무시하며 감쌌다. 한 대표의 인적 쇄신 건의에 “누가 문제가 있는지 소상히 적어 전달해달라”고 캐묻는 건 참모에게나 할 법한 지시다. 일개 정치 브로커의 농간에 김 여사가 줄곧 등장해도 속수무책이면서 비워둔 특별감찰관을 채우자는데 이런저런 조건을 달며 미적대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의 숭고한 인내심이나 엄청난 결단을 바라는 게 아니다. 겸허하게 귀를 열고 상식에 맞게 바꿔가면 그만이다. 의료든 연금이든 개혁이 뭐 하나 수월치 않은데 우군을 늘리기는커녕 줄줄이 떨어져나가는 제 편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탄핵이라는 극단적 표현이 난무하고 지지율 20%의 마지노선마저 위태로운 건 비정상이다. 오판을 반복하면서도 편협한 소명의식에 사로잡혀 마냥 시간은 내 편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국빈방한 공식 환영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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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직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된 불통과 원맨쇼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국회의원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사람을 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유권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끼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으니 상대를 모두 만만하게 본다는 것이다. 검사로서 칼을 휘둘렀을 뿐 그 칼날이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도 있는 정치의 본질을 체질적으로 거부하며 버텨온 셈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별의 순간’을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 말이다. 부당한 권력과 맞설 때는 박수를 받았다. 그러다가 환호에 취해 사방을 적으로 돌려세웠다. 충성을 거부한다고 사람을 쉽게 본다는 의미가 아닐진대 번번이 국민을 이기려 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조직의 보스가 아닌 국가의 리더다.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일방통행에 왜 대다수가 마음을 졸여야 하나. 만회할 숱한 기회를 날리면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경고신호가 수두룩한데도 딱히 변화가 없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윤 대통령은 '업보'라지만 실상은 자업자득이다. 잘못이라고 지적해온 여론을 졸지에 철없는 돌팔매질로 깎아내렸다. 공감대 없는 추진력은 우격다짐에 불과하다. 진정성이 패밀리 비즈니스와 연결되면 특혜일 뿐이다. 여당 대표는 한때 충실한 부하였고 야당 대표는 선고를 앞둔 피고인이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본다면 더 심각한 일이다. 책임을 회피하며 홀로 깃발을 든다고 대체 뭘 할 수 있나. 대통령은 왕과 다르다. 물러날 때가 정해져 있기에.
김광수 정치부장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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