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하는 북한 김정은 |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 ▶ 최근 유엔총회 제1위원회의(군축·국제안보)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북한 대표부 림무성 외무성 국장이 북한을 '노스 코리아'로 부른 한국 외교관을 향해 "대한민국 외교관들이 유엔 회원국 이름도 모르면서 평화와 안보를 얘기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오케이?"라고 쏘아붙였다. 영어로 공식 국호인 'DPRK'로 부르라는 요구다. 지난 2월 파리올림픽 아시아 예선 때도 북한 여자축구 리유일 감독은 한국 기자가 '북한'을 입에 올리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정확히 부르라"고 야단쳤다.
▶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북한'이란 호칭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남북관계가 좋지 않을 때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근래 들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지난해 7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이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부른 뒤부터다. 김정은이 지난해 연말 한국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로는 민족과 통일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속속 사라지고 있다. '삼천리'란 단어를 모조리 들어내더니 최근엔 '애국가'였던 국가(國歌)도 '국가'로 바꿨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 |
▶ 그렇다면 북한의 국호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북한 국호에 담긴 '인민'은 사실 남한 민중의 귀에도 익숙한 단어였다. 1947년 7월 6일자 조선일보는 2면에서 '7월3일 서울시내중요지점 10개소에서 2천495명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라며 새 정부의 국호로 '조선 인민공화국'이 70%, '대한민국'이 24% 지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인민'의 사용권은 북한이 가져갔다. 애초 북한은 국호로 김두봉이 제안하고 김일성이 동의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선호했으나 김일성의 스승인 소련군 소장 니콜라이 레베데프의 제안에 따라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결정됐다. 국호가 워낙 긴 탓에 북한에선 자신들 나라를 '공화국'으로, 주민을 '조선인민'으로 부르고 있다.
▶ 김정은의 '통일 지우기'가 노골화하면서 "북한과 제발 따로 살자"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선진국 세대라는 2030에서 특히 그렇다. 진보 일부에선 이참에 북한을 '조선'으로 불러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북한이 모멸감을 느끼는 호칭을 굳이 사용하는 것이 남북화해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리에서다. 반대로 북한 혐오층에서는 과거 중공처럼 공산국가의 뉘앙스가 실린 '조공'(朝共)으로 하자거나 '후(後) 조선' , '김씨조선'으로 하는 게 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발언하는 주유엔 북한 대표부 외교관 |
▶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우리의 국가 체제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 헌법은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 영토의 북부 지역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집단이란 뜻이 담겼다. 그래서 북한 요구대로 우리가 '조선'으로 호칭한다면 남북통일 또는 북측 영토 수복의 명분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 된다. 만약 북한 정권이 무너질 경우 주변 열강과 국제사회를 향해 북측 영유권을 주장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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