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30 (수)

이스라엘 ‘운르와 금지’ 파장…국제법 판단·미 대선 결과 주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칸유니스의 한 대피소에 29일(현지시간) 유엔 차량이 들어와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운르와) 활동 금지법을 두고 국제사회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해당 법이 국제법에 어긋나며, 이스라엘은 국제법정에서 방어 논리를 상실하게 되리란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대응은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운르와 활동 금지법이 시행된다면 이스라엘은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위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유엔 헌장 2조에 따라 “유엔의 활동에 모든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날 이스라엘 의회는 운르와가 이스라엘과 동예루살렘 등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또한 운르와를 테러 단체로 지정해 이스라엘 정부와의 소통 및 협력을 금지했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이스라엘 점령지에 해당하지 않으나, 그동안 두 곳에서 운르와가 이스라엘의 협조 하에 활동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운르와 활동을 못 하게 한 것이다.

구테흐스 총장의 서한에 이스라엘 측은 “국제법에 따라 가자지구에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으나 파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노르웨이는 유엔 총회에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혐의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운르와 활동 금지법을 통해 유엔 및 인도주의 기관의 팔레스타인 주민 지원을 막는 것이 국제법을 위반하는지를 국제법정에서 판단하자는 것이다.

ICJ의 판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치적·외교적 영향력을 지닌다. 에스펜 바르트 아이데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노르웨이는 앞으로 몇 주 내로 총회에서 결의안 초안을 표결하길 바란다.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하룻밤 사이에 정치적 변화가 일지 않는다고 해도 합법과 불법을 가리는 것의 의미는 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경향신문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지난 5월28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로고가 적힌 벽 앞을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운르와 활동 금지 조치가 이스라엘과 네타냐후 총리 등이 연루된 또 다른 국제법원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가자지구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이스라엘을 ICJ에 제소했다. 이에 대해 ICJ는 이스라엘에 집단학살을 방지하고 가자지구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려는 조치를 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카림 칸 검사장은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을 가자지구 학살 전범으로 지목했는데, 이때도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활용한 것을 문제 삼았다.

두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조력 하에 인도적 지원이 가자지구로 반입되고 있다는 점을 방어 논리로 내세웠다. 그러나 운르와의 활동이 멈추면 이러한 논리도 힘을 잃게 된다. 한 외교관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지원을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국제법원이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만약 (운르와 금지법으로 인해) 지원이 감소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레츠에 전했다.

이스라엘의 우방 미국도 운르와 활동 금지법에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이달 초 미국은 이스라엘에 서한을 보내 가자지구 지원을 허용하지 않으면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도 끊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독일, 프랑스, 일본, 노르웨이 등과 더불어 지난해 운르와의 10대 지원국이었다.

경향신문

한 팔레스타인 아동이 2013년 4월10일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나눠준 밀가루 포대를 껴안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미국의 실제 대응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운르와 활동 금지법은 90일 이후인 2025년 1월20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다음 달 5일 대선에 나선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을 둘러싸고도 이견을 갖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하면서도 가자지구 민간인 고통에 우려를 표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운르와 자금 지원을 전부 중단한 전력이 있다.

가자지구·서안지구·동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구호기관이었던 운르와의 공백을 채우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학교 등 운르와가 운영하던 시설, 물류 이동 경험과 네트워크 등을 대체할 기관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은 성명을 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에게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렸다. 운르와를 금지함으로써 초래될 고통과 이 결정 뒤에 숨은 잔인함을 헤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짧게 살고 천천히 죽는 ‘옷의 생애’를 게임으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