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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수)

[매경이코노미스트] 일본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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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들던 복잡미묘한 감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5060세대가 젊었을 때 일본은 넘사벽으로 애증의 대상이었다. 1990년대 말에도 아키하바라의 전자제품이나 코끼리밥솥은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어서 여행객들이 귀국할 때 밥솥을 한가득 들고 오는 모습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은 글로벌 가전 시장의 대부분을 한국과 중국에 빼앗기고 남은 것은 전자밥솥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문화적으로도, 빌보드에 J팝 카테고리가 있는 것이 여간 부럽지 않았는데, 지금 그 자리는 K팝이 차지한다.

이런 격세지감은 기분 좋게 끝나야 할 텐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남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앞섰다고 생각했건만 이번에도 일본에서 느낀 점은 그 간격만 좁혀졌을 뿐, 여전히 앞에 있는 것 같다. 일본의 경제 상황이 우리보다 크게 낫지도 않은데 왜 그들은 좀 더 여유 있어 보일까? 5060세대로서 그저 과거의 열등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MZ세대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는 5060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일본에 대한 열등감은 전혀 없고 그저 이국의 문화적 차이만 느끼는 것 같다. MZ세대의 그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좋아 보이며 긍정적이다. 그런데도 2% 부족한 무언가가 나 같은 기성세대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지나친 자긍심에 대한 막연한 경계만은 아니다.

그중 하나는 우리와는 다르게 전통과 관습에 대해 젊은 세대를 포함한 대다수 일본인이 '행동으로 보이는 존중'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이방인의 눈에 걸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껏 끼를 발산하는 요란한 복장의 젊은이조차 신사에서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것은 형식적이라 해도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사회적 압박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큰, 일본의 사회적 자본이다.

또 다른 하나를 이번에 학회에서 재발견했다. 예전에 학술대회 브로슈어를 찍으려고 단골 인쇄소에 일본 학술대회 브로슈어를 샘플로 보여주면서 얇은 종이에 선명한 인쇄를 부탁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런 고품질 종이는 이제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이런 종이를 못 만든다니. 삼국시대부터 한지를 사용했던 종이에 대한 자부심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디지털 기술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우리는 종이 인쇄물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수요가 부족하니 공급이 이를 따를 수밖에 없어서 실제로 많은 인쇄소가 문을 닫고 있다.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 일본은 그런 수요가 살아남아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을 뒷받침하는 밑거름이 된다. 우리와 일본 모두 중소기업이 고용의 70~80% 이상을 담당하지만, 매출을 기준으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이 우리보다 10~20%포인트 정도 더 높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아날로그만을 고집하거나 혁신에 주저하는 것도 아니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없는 우버나 그랩은 일본에서 기존 택시와 잘 공존한다.

혁신의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수용은 일상에 녹아드는 문제이다. 사회·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포용적 성장'의 맥락에도 부합된다. 발 빠른 혁신도 필요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한국인 모두가 공유하는 관습인 에토스(ethos)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만의 에토스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불안감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

[김도훈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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