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초청 개인전 여는 하정우
배우 하정우가 지난 25일 서울 학고재 화랑 입구에 전시된 자신의 200호 대작 ‘무제' 앞에 서 있다. /장련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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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서울 종로구 삼청동 화랑가에서 가장 북적이는 갤러리는 학고재다. 전시회 작가는 배우 하정우(46). 올해 초 학고재에서 먼저 나서 그를 초청했다. “학고재 같은 명문 화랑에서 연예인 화가 전시를 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우리 미술계가 저변을 확대하려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며 “하정우 작가를 첫 개인전부터 눈여겨봤는데, 완성도나 작품 개념이 기성 작가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있어 초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학고재에서 만난 하정우는 “너무나 영광스러운 기회”라며 “그저 좋아서 시작한 그림이 어느샌가 절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2010년 경기도 양평 닥터박갤러리의 첫 개인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이 14번째 개인전으로, 단체전까지 합하면 25회나 된다. 여느 전업 작가 못지않은 성실한 행보다. 그의 그림은 팝아트 계열의 표현주의 작품이 많다. 일부는 수천만 원에 팔린다. 미술품 구매자는 그림뿐 아니라 작가의 명성까지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유명인이면 아무래도 유리하다. 동시에 비판도 거세다. 하정우는 익숙한 듯 답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진하면 일흔 살쯤엔 화가로 인정받지 않을까요.”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부친 김용건(78)의 영향이 컸다. 김용건은 그림을 무척 좋아해 젊은 시절부터 컬렉팅에 몰두했다. 그러나 하정우가 대학생이던 1990년대 후반 그림을 죄다 팔아야 하는 위기가 닥쳤다. 모친의 사업이 엎어지면서 온 가족이 빚더미에 앉은 때였다. 김용건이 내놓은 작품 중에 유명 화가의 친필이 담긴 그림이 있었다. “화가와 전속 화랑에서 아버지께 전화해 노발대발했어요. 극도로 곤혹스러워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결심했죠. ‘내가 화가가 되겠다, 다시는 아픔을 갖지 않게 해드리겠다’고요.” 김용건은 학고재 초청까지 받은 아들을 보고 “하늘에 감사한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첫 전시회를 열 무렵엔 피해의식도 있었다”며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4번의 개인전은 그 피해의식으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림은 제 생존 본능의 일부인 것 같아요. 살아있다는 걸 끊임없이 확인하고 증명해야 하는데, 영화를 찍지 않을 땐 그림으로 하는 거죠. 그래서 쉬지 않고 그릴 수 있나 봐요.”
하정우의 전시작 35점 중 창조적 문양 해석이 돋보이는 ‘무제’(162.2x130.3㎝). /학고재 |
이번 전시에선 회화 35점을 선보인다. 처음으로 그린 200호(193.9x259.1cm) 대작도 나왔다. 그에게 200호 캔버스는 육체적인 도전의 장(場)이자 기도의 공간이었다. “검정 마카펜으로 단순한 선을 몇 시간이고 반복해 그리다 보니 절로 명상이 되더군요.” 처음으로 시리즈 작품도 선보였다. 페르시아 카펫 시리즈와 탈 시리즈다. 카펫은 지난해 여름 개봉한 영화 ‘비공식작전’ 촬영 때 모로코에 머물며 영감을 얻었다. “배우는 자칫하면 감독의 인형에 그칠 수 있죠. 때론 공허함과 허탈감이 있어요. 전 그런 느낌이 들 땐 어떻게든 표현을 해야 해요. 무작정 캔버스를 붙잡고 그리기 시작하는 거죠.” 학고재는 내년 4월 시카고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엑스포 시카고’에도 하정우의 신작 2점을 출품할 예정이다.
그에게 ‘끊임없는 존재 증명’의 한 축인 감독으로도 두 편이 대기 중이다. 골프를 소재로 한 영화 ‘로비’가 내년 개봉 예정이고, 블랙 코미디인 ‘위층사람들’도 촬영에 들어간다. 둘 다 그가 주연도 맡았다. “배우로서 아직 뭔가를 이뤘다고 자만하지 않듯, 화가로서도 나이 들 때까지 계속 그려나가겠습니다.” 전시는 내달 16일까지, 관람은 무료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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