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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딥페이크’ 서울대 졸업생 징역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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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사진 합성해 음란물 제작 유포

조선일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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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여성 동문들의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어 텔레그램으로 유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주범 박모(40)씨와 공범 강모(31)씨가 30일 1심에서 징역 10년과 징역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박준석)는 “박씨와 강씨는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선의로 대했는데도, 마치 사냥감을 선택하듯이 골라 장기간에 걸쳐 성적으로 모욕하며 인격을 말살했다”며 “엄정히 처벌해 법과 도덕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리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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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씨와 강씨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두 사람에 대해 지인들은 “대학 시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고시나 각종 시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했고, 현재까지 미혼에 직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듭된 실패가 왜곡된 성인식을 만들었고, 결국 성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은 서울대 졸업생들이 서울대 후배와 동료들을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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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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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된 주범 박씨와 공범 강씨는 2020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대 동문 12명을 포함해 여성 61명의 얼굴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 2034개를 만들었고, 이를 텔레그램 대화방 등을 통해 유포했다. 동문들 사진은 졸업 앨범이나 소셜미디어 등에서 구했다고 한다.

박씨는 텔레그램 채널과 단체 채팅방 200여 개를 만들고, 비슷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채팅방 링크를 전해주며 음란물을 공유·유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허위 영상물을 얼굴 사진의 주인공인 피해자에게 46차례 직접 전송하고, 공범 강씨에겐 피해자들 사진을 보내 음란물을 만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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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상훈


두 사람이 ‘성범죄자’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박씨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한 뒤 외무고시 등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낙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교수와 동창들은 학창 시절 그를 ‘예의 바른 학생’ ‘후배 잘 챙기는 선배’ 등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가르친 교수들은 “순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고 교우 관계도 좋았다” “조용하고 착한 학생으로 기억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시험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학부 과정만 10여 년간 다녔다고 한다.

강씨는 서울대 사회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 로스쿨까지 진학했다. 그러나 변호사 시험에 떨어지면서 좌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창들은 그에 대해 “무난했던 형이라 이런 일에 휘말릴 줄 전혀 몰랐다”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등 학교 생활은 활발했다”고 했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시험 응시 횟수는 총 다섯 번인데, 다섯 번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응시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이른바 ‘변시 오탈자(五脫者)’가 되는 것이다. 강씨의 경우 ‘변시 오탈자’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는 말이 많았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점이다. ‘서울대생’ ‘능욕’ 같은 제목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참여했다가 처음 만났고, 이후 서로를 “한 몸”으로 부르고 “합성 전문가”로 치켜세우며 소셜미디어 안에서만 돈독한 ‘온라인 지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피해자들에게는 금전 등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이, 오로지 성적으로 모욕하고 조롱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박준석)는 이날 두 사람의 주장을 대부분 배척하며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신병적 증세로 범행했다고 주장하지만,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여성에 대한 열등감과 증오심을 텔레그램이 보장하는 익명성 등 집단 분위기에 취해 변태적으로 표출했다”며 “보안성을 이용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오만으로 범행에 이르렀다”고 했다.

재판부는 “국내 최고 지성이 모인 대학에서 동문 피해자들을 상대로 소위 ‘지인 능욕’ 성범죄를 저질렀다”며 “음란물을 두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보면 극히 혐오스럽고 저질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두 사람이 검거될 때까지 모든 남성 지인을 의심하며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사회생활을 해야 했다”며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상 사진도 온라인에 올릴 수 없게 되는 등 끝없는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해서 피해 회복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보안성을 이용한 각종 범죄가 우후죽순으로 퍼지고 있지만 메신저의 속성으로 인해 범죄를 단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두 사람은 피해자와 제보자들의 수년간 노력 끝에 간신히 체포되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고 지적했다. 선고 내내 박씨는 울먹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하는 모습이었고, 강씨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고 직후 피해자들을 대리한 조윤희 변호사는 “박씨에 대해 검찰이 구형한 10년을 재판부가 그대로 선고한 것은 이 범죄가 엄단돼야 한다는 걸 잘 보여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박씨와 강씨에게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도 명령했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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