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최신 보고서에서 중국이 최근 몇 년 사이 핵탄두를 500개로 늘렸다고 추정했다. 미 국방부도 중국이 2035년까지 1500개 핵탄두를 비축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 바이두 캡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의 핵 능력 증강은 위기의식에 의한 방어적 대응일까? 아니면 패권 야욕을 위한 공세적 조치일까? 지난 25일 중국의 한층 빨라진 핵전력 확대를 둘러싸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시진핑 정부의 중국 위기 인식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서울 한양대 국제관에서 열린 현대중국학회 2024년 추계 공동학술회의에서다.
첫 세션에서 국방 파트의 발제를 맡은 인천대 중국학술원 구자선 고급연구원은 “최근 중국의 핵 증강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압도적이지만 이런 공세적 행보가 미국과의 패권 전쟁을 위함인지, 아니면 방어적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논쟁적 화두를 던졌다.
구 연구원은 “지금의 중국을 보면 고슴도치가 공격당했을 때 오히려 가시를 세우고 방어하는 모양새”라며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미·중 전략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도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 연구원은 최근 중국의 공세적 외교나 핵전력 증강 등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한 방어적 차원의 조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5일 한양대 국제관에서 개최된 2024년 추계 공동학술회의 ‘시진핑 정부의 중국 위기 인식과 대응 방안’의 첫 세션 ‘현 시기 중국의 변화와 개혁 : 국방, 교육, 당-기업 관계’에서 인천대 중국학술원 구자선 고급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구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행보가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근거 중 하나는 미·중 간 압도적인 전력 차이와 중국의 취약성이다. 얼마 전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그간 최소한의 억지 전력으로써 200여 개의 핵탄두만 보유해 오던 중국이 최근 몇 년 사이 그 수를 500개로 늘렸다고 추정했다. 미 국방부도 중국이 2035년까지 1500개의 핵탄두를 비축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핵탄두의 총보유량(미국 5044개, 중국 500개)이나 실전 배치된 수(미국 1770개, 중국 24개)를 보면 중국은 미국의 1/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핵탄두뿐만 아니라 전략 폭격기, 전략 핵잠수함, 미사일 등 핵 투발 수단의 미·중 격차도 상당하다. B-2 같은 미국의 스텔스 전략 폭격기는 중국 방공 시스템에 노출되지 않고 본토를 공격할 수 있으나, 중국의 H-6N는 미 본토까지 도달하기도 어렵다. 또 미국은 오하이오급 핵잠수함 중 14척은 운용 중이고 4척은 개조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핵잠수함은 고작 6대뿐인 데다 고질적인 소음으로 레이더망에 자주 탐지되며, 잦은 고장도 취약점 중 하나다.
지난 17일 로켓군 여단을 방문한 시진핑(사진 중앙) 중국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 주위로 장병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뒤로 이 부대에서 운용하는 둥펑 계열 탄도미사일이 수직으로 도열해 있다. 신화=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 내부의 로켓군 전력 약화와 주변국과의 긴장 관계도 중국의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부패 스캔들로 사실상 고위 장성들이 대거 숙청된 상태에서 다시 전문가를 양성하고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현재 중국의 외교관계는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주변국에 의해 4면이 포위된 상황이다. 최근 미·일 안보 협력 강화, 일본 자위대 재편, 대만 관료·정치인·군 인사의 잇따른 방미, 미국의 대(對)대만 무기 판매, 필리핀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격화, 미국의 타이폰(Typhon) 미사일 시스템 필리핀 배치 등 요인이 중국의 공세적 대응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미 해군의 전투력 감소와 전투함·잠수함 제조 능력이 중국에 뒤처졌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에 구 연구원은 “단순히 숫자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가장 중요한 항공모함은 미국이 11대인데 반해 중국에는 4대밖에 되지 않고, 무기의 신뢰성에서도 실전에서 써본 적 없는 중국의 장비에 훨씬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구 연구원은 결론에서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문제인 미·중 양국의 핵전력 증강을 막기 위해 과거 미국과 소련 간 전략무기감축협정을 참고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미·중의 핵전력 차이가 너무 크다”며 “어느 정도 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더 숫자를 늘리지 않는 상호 협정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육군사관학교 양정학 교수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일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양 교수는 최근 중국의 전통적인 최소 억지 전략이 조정되고 있음은 분명하고 중국의 최종 목표는 강대국으로서 전략적 핵 균형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중국이 공식적으로 강군 건설의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고 그 계획과 시간표에 따라 군 개혁과 무기 현대화를 진행 중”이라며 “군사 전략 측면에서도 많은 조정이 이뤄졌고 그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공세적인 방향은 명확하다”고 분석했다.
지난 25일 한양대 국제관에서 개최된 2024년 추계 공동학술회의 ‘시진핑 정부의 중국 위기 인식과 대응 방안’의 첫 세션 ‘현 시기 중국의 변화와 개혁 : 국방, 교육, 당-기업 관계’에서 국방 파트 토론을 맡은 육군사관학교 양정학 교수.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양 교수는 중국의 핵 투발 수단이 수적으로는 미국보다 적지만 그 기술이 계속 고도화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은 미 전략폭격기와 유사한 모델인 H20 개발에 들어갔고 2020년대 중반에는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중국은 094형 다음 급인 096형 핵잠수함도 개발 중이고 2020년대 후반 운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경보 즉시 발사(LOW)’ 핵 태세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양 교수의 입장이다. 중국이 아직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주장하고 있고 또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조정될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중국 내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에 따르면 2021년부터 전략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중국 내 군사 전문 서적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에 대해서도 양 교수는 중국이 주변국에 더 위협이 된다고 봤다. 물론 어느 쪽에서 먼저 위협했는지는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적어도 UN 중재재판소 판결이 나왔음에도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확장을 꾀하는 것은 국제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지속적인 군 개혁, 군사력 현대화, 전력 투입, 군사 훈련 등은 주변국에 위협을 주는 시그널로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현대중국학회·인천대 중국학술원·동서대 중국연구센터·한동대 국제지역연구소·인천연구원(인차이나포럼)이 주최하고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가 주관한 2024년 추계 공동학술회의 ‘시진핑 정부의 중국 위기 인식과 대응 방안’이 지난 25일 한양대 국제관에서 개최됐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밖에 논외로 진행된 양안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토론에서 양정학 교수는 중국이 부담이 큰 군사작전보다는 ‘부전승’을 노리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상륙작전을 하기에는 수송 능력이 아직 부족하고, 최근 군사 훈련에서도 봉쇄를 통한 외부 세력 개입 차단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중국이 직접적인 군사작전을 펴진 않겠지만 군사력을 충분히 투사해 대만을 완전히 봉쇄한 상태에서 압박을 더한다면 적어도 정치적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반면 구자선 연구원은 중국의 봉쇄 전략은 오히려 최소 몇달이 걸리기 때문에 중국이 생각하는 목표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속전속결’의 중요성”이라며 중국도 기회가 된다면 봉쇄보다는 속전속결을 시도할 것이고, 다만 며칠 만에 점령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없으면 쉽게 침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