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불단행(禍不單行·재앙이 겹쳐 옴)이라고, 비극의 덩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 권력을 쥔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 특별감찰관을 모두 거부한 것이 그 증거다. 정치적으로 죽은 대통령이 아직 숨은 붙어 있는 집권여당 대표에게 군림하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제2부속실을 설치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온갖 김건희 의혹은 없어지나.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권력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작금의 행태가 어떤 후폭풍으로 돌아올지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데 죽었어도 죽은지 모르고 돌아다니는 존재로 두 가지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 1980~1990년대 홍콩 영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강시다. 서양귀신과 동양귀신.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죽은 줄도 모르고 날뛴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존재다.
둘 중 윤석열 정권에 맞는 것을 고른다면 강시를 택하고 싶다. ‘앉은뱅이 주술사’에게 조종받는 눈먼 무사,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로 낙인찍힌 그분 처지는 슬프고도 코믹하다. 도사의 주문에 따라 천지 분간 못하고 통통 튀는 강시가 어울린다. 흉한 모습의 좀비보다는 뺨에 연지곤지라도 찍어바른 강시가 낫지 않나.
더 큰 문제는 강시든 좀비든 지각이 마비됐다는 것이다. 총선 참패 이후 뻔뻔한 방탄국정으로 일관하면서도, 대통령과 그 부인이 각종 스캔들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국민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라고 본다. ‘강시정권’은 이편과 저편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돌진하고, 온 국민을 적으로 돌린다. 강시정권은 전후좌우를 살필 수 없기 때문에 경제든 안보든 국정은 산으로 가고 있다.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이 국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없이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 전쟁으로 빨려들게 하는 무책임한 불장난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세계 정세가 요동치는 요즘 같은 격변기에, 무지한 정권은 존재만으로도 국가에 위협이 된다. 그러므로 반국가세력, 반대한민국세력은 윤석열 정권 그 자체다.
윤석열 정권의 좌충우돌을 보면서 비지스의 명곡 ‘I Started A Joke’가 떠올랐다. “I started a joke,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crying(내가 농담을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은 울기 시작했네)” “I started to cry,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laughing(내가 울기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은 웃었네)” “Till I finally died,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living(마침내 내가 죽자, 세상은 살아나기 시작했지)”.
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팝 넘버는 아이러니하게도, 신뢰 잃고 권위도 잃은 윤석열 정권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공정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편파라며 비웃었네’ ‘내가 상식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무식이라 했지’ ‘내가 반국가세력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은 나를 가리켰어’.
그럼에도 강시영화 관람하듯 저들의 기행을 보며 웃고 떠들 일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온 국민이 힘들여 이룬 국가적 성취가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대통령은 “돌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는데, 강시는 감각이 없으므로 귀담아들을 말이 아니다. 강시정권에 거울을 비춰 자신이 얼마나 흉한 몰골인지 깨닫게 해야 한다. 아니면 이마에 ‘노오란’ 부적을 붙여 멈춰 세우든가. 그럼에도 강시가 돌진을 계속하려 한다면 짱돌을 던져서라도 방향 전환을 하게 하거나 주저앉혀야 한다. ‘감히 대통령에게 짱돌을…’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공천개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탄핵수사를 주도했던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족 하나. ‘강시정권’을 ‘각시정권’으로 잘못 읽는 독자는 없기 바란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
이용욱 정치에디터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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