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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농민을 위하여[이준식의 한시 한 수]〈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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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농민들 무얼 하소연하려는지, 임금을 알현하려 하네.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해, 부질없이 날씨만 원망해 왔는데.
농작물 걱정거리 설명할 테고, 곤충의 폐해를 말씀드릴 생각.
궁궐 주변을 배회할 뿐, 제 의중을 토로할 도리가 없어
종일 성내에서 울기만 하다, 눈물이 다해 논밭으로 되돌아가네.
내 이 노래를 채집해 간다면, 내 말이 분명 소용 있으리니.
(農臣何所怨, 乃欲干人主. 不識天地心, 徒然怨風雨.
將論草木患, 欲說昆蟲苦. 巡迴宮闕傍, 其意無由吐.
一朝哭都市, 淚盡歸田畝. 謠頌若采之, 此言當可取.)

― ‘농민의 원망(농신원·農臣怨)’ 원결(元結·719∼772)


농민의 신고(辛苦)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안타깝다. 빈약한 추수와 해충 피해에 속수무책인 농민들이 임금을 알현하려 하지만 ‘궁궐 주변을 배회할 뿐’, 가혹한 세금이나 흉작의 고충을 토로할 길이 없다. 이에 시인이 불쑥 끼어든다. ‘내 이 노래를 채집해 간다면, 내 말이 분명 소용 있으리니.’ 군주는 민정을 살피기 위해 ‘채시관(采詩官)’을 통해 민가를 채집했던 바,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농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리라고 호소한다.

노래의 형식을 갖추었으되 가창보다는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둔 운문이 바로 한대에 유행한 악부시(樂府詩). 원결은 두보와 함께 당대 악부시를 선도했고, 이 전통은 후일 백거이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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