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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박일호의미술여행] 돌덩어리에 잠재된 형상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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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안에는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인 ‘피에타’가 있다. 미켈란젤로 작품인데 마리아의 슬픈 표정과 경건한 분위기, 작품 전체의 균형과 조화가 잘 표현됐다. 그런데 여기 있는 ‘피에타’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같은 작가가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인데 인체 비례도 안 맞고 형태도 무척 거칠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를 제작한 지 50년 후에 제작한 것이다. 마리아의 자리였던 가운데에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을 제작해 넣었고, 슬픈 표정의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좌우에 배치해서 종교적인 엄숙함보다 비극적 상황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비틀린 몸과 축 늘어진 두 팔,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에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보다 고통받는 순간의 인간적인 측면이 드러난다. 그 순간의 극적인 분위기에 초점을 두어 인간적인 고통과 슬픔을 연상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애를 인간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일보

미켈란젤로 ‘피에타+(1546∼1555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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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거칠게 다룬 형태들이 눈에 띈다. 매끄럽게 표면을 다듬어 완성을 강조했던 이전 작품의 미의 이념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작품을 ‘미완성’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작품의 창작이란 돌덩어리에 감춰진 형상을 예술가가 영감이나 상상력을 발휘하여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사실적이며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던 이성적 방식과 달리 예술가의 감성적 표현으로 돌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미켈란젤로는 말년에 신앙심이 깊어지고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는 종교적인 감정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전에 강조했던 균형이나 조화보다 생명력 있는 형태나 정신성이 담긴 작품을 추구했고, 그 탄생 과정을 이런 작품으로 나타내려 했다. 이 작품은 이성적이고 정확한 묘사보다 감성적 표현을 통한 참신하고 감동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점이 미술의 새로운 길로 감성적 경향을 펼친 17세기 바로크미술로 이어졌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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