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로 생성한 녹취 공포와 관련된 이미지. [이미지 = ChatG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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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나눈 통화 녹음이 폭로되면서 정치권이 ‘녹취 포비아(공포)’에 빠졌다. 최고 권력자라는 대통령조차 통화 내용이 몰래 녹음되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개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경계심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계뿐 아니라 공무원 사회와 기업 관계자들도 녹취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1일 국민의힘 내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 행위와 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한 법리적 검토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대화 당사자가 몰래 한 녹음은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는데, 갑질이나 폭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제외하고는 녹취를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1일 “요즘 사적인 대화, 사생활 보호영역에 있는 대화 녹취해서 공개하는 파렴치한 행태가 많이 벌어진다”며 “신뢰감 있는 인간관계 형성 깨뜨리는 행태”라고 말했다.
녹취 폭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적 공세를 위한 단골 무기였다. 올해만 해도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대남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등 정계를 달군 각종 사건의 중심엔 당사자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이 자리잡고 있었다. 최근엔 명 씨의 전화통화 녹취가 정계를 뒤흔드는 핵폭탄이 됐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녹음을 생활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녹취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초선 의원들 상대로 ‘반도체와 AI’ 관련 강연을 열었는데 이달희 의원은 “상대가 녹음하면 내가 녹음 당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술은 개발할 수 없냐”며 묻기도 했다.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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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공포는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의 한 시청에서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자주 연락을 받게 된 민원인과 통화하면서 불쾌감을 느꼈다. 민원인과 통화할 때마다 들리던 ‘삐’라는 소리가 상대방이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A씨가 해당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종종 민원인에게 정보 정정을 위해 연락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민원인은 통화가 끝날 때쯤 A씨의 이름까지 확인하며 감시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A씨는 “민원인이 마치 내가 잘못하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며 “녹음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 알 수 없어 공포가 느껴지고 스트레스도 쌓였다”고 털어놨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 중인 한 인사관리(HR) 임원은 “회사 내 대화를 녹취해 무기화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인사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땐 항상 녹취되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교육 방침이 있을 정도”라며 “인사 관련 대화를 나눌 땐 처음부터 같이 녹음하겠다고 밝히는게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입한 외부 인사의 성과가 좋지 않아 경고를 했더니 취업 전 나눴던 대화까지 녹취해 두고 취업 사기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영입 때 했던 조기 승진 가능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녹취해두고 성과와 상관 없이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상대 동의 없는 녹취를 원천 금지하지 않으면 불신사회를 조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악영향이 커질 것”이라며 “녹취 공개 행위도 국가안보, 사회적 약자 보호 등 공익 관련한 아주 제한적 목적이 아닌 한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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