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주변 도로에서 시위를 연 현대트랜시스 노조원과 사고 예방을 위해 투입된 경찰. 사진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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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변속기·시트 생산 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매출의 2%를 성과급으로 달라는 노조, 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성과급으로 줄 순 없다는 회사가 팽팽하게 맞서면서다.
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회사 측과의 협상에서 성과급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당초 지난달 30일이었던 파업 시한을 이달 4일까지로 연장했다. 파업은 지난달 11일부터 시작됐다.
지난달 말 현대트랜시스 노사는 충남 서산 오토밸리에서 단체협약에 대한 대면 협상을 진행했지만, 주택자금 대출 등 50여개 항목에 대한 서로의 의견차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핵심 쟁점인 성과급에 대해 합의하려면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게 노사 양측의 예상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규모는 매출액의 2%다. 지난해 매출(11조7000억원) 기준으로 노조가 주장하는 성과급 총액은 2340억원이 된다. 이와 함께 노조는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도 함께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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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내서 성과급?” vs “영업이익 보장해야”
사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대트랜시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169억원이었는데,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성과급으로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 요구대로 한다면 빚을 내서 성과급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28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주변 대로에 모여 집회를 개최한 현대트랜시스 노조원들. 사진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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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노조(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트랜시스 서산지회)는 상경 투쟁을 벌였다. 지난달 28일 노조원 1000여 명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앞에 모여 초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집회를 열었다. 사옥 앞 4차선 도로 중 3개 차선을 가로막고 열린 집회였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사측은 더 이상 장난치지 말고 하루빨리 단체교섭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 전날과 다음날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주변인 서울 한남동 주택가 골목에서 현수막 시위도 벌였다.
노조는 현대차·기아가 현대트랜시스의 영업이익률을 보장해주면 요구한 성과급을 받는 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현대차그룹 납품사슬에 속한 계열사의 영업이익률(2023년 1%)은 양재동 본사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성과금 지급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19년 기존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 2곳을 합병해 출범한 현대트랜시스는 90% 이상의 매출을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과의 거래로 올리고 있다. 현재 최대주주는 현대차(41.1%)이며, 기아(40.4%)와 현대모비스(15.7%) 등 계열사가 지분 99.2%를 갖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영업이익률 책정은 경영적 판단 대상이지, 노사 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은 “자회사로부터 부품을 값싸게 조달하기 위한 모회사의 결정 자체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2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인근 진입로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현대트랜시스 노조원. 사진 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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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이번 갈등의 밑바탕엔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 흐름에 대한 노조의 우려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트랜시스 매출의 60~65%는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구동장치) 부문에서 나온다. 전기차 시장이 대세가 되면 수요가 크게 줄 수 있는 내연차 부품들이다. 현대트랜시스는 전기차용 파워트레인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산업학계 관계자는 “향후 불확실성 때문에 현재의 이익을 노동자들이 챙겨 놔야 한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동화 시장에 대비한 회사의 사업 구조 전환 과정에서 종전의 숙련 노동자들은 자신이 도태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 불안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사측은 “전동화 시대에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 인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트랜시스는 연 90만대의 전기차용 감속기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점 등을 내세운다. 또 전기차 부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향후 3년간 2조10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도 밝힌 상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명예교수(한국자동차산업학회 부회장)는 “전동화뿐 아니라 각 산업별 구조 변화 속에서 노동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 간 신뢰 없이는 기업 생존까지 힘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시험대”라며 “금전적 인센티브뿐 아니라 감수성을 살려낼 수 있는 제도를 갖춘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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