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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일)

이슈 미술의 세계

‘신인 연극배우’ 조승우의 원맨쇼 같은 ‘햄릿’…‘조햄릿’에 가려진 배역들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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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 데뷔 24년 만에 ‘햄릿’으로 연극 무대 도전…뮤지컬·영화·드라마에서 갈고 닦은 연기 내공 쏟아내

복잡한 내면과 심리의 햄릿 그 자체로 변신…셰익스피어가 표현하고자 한 ‘햄릿’ 설득력 있게 전달

‘조햄릿’ 효과에 1000석 규모 CJ토월극장 모든 회차 전석 매진…감각적인 무대 미술 돋보여

신유청 연출 “덴마크 왕자 이야기가 시대의 관절이 어긋나버린 이 세상에 날카로운 메시지 던지길”

햄릿 외 다른 주요 배역들 존재감 약한 건 흠…조승우 앞세워 화제성과 흥행 성공했지만 작품성은 호불호 갈릴 듯

‘타이틀 롤’은 연극·뮤지컬·오페라·영화 등에서 제목과 같은 이름의 주역을 의미한다. 그만큼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는 다른 작품의 주인공보다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배역이 작품의 얼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흥행이나 작품성 등 성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타이틀 롤로 출연한 작품이 성공하면 인지도와 인기가 치솟는다. 해당 역할에 빗대 생겨난 애칭은 뿌듯한 훈장과 다름없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헤드윅’에서 타이틀 롤로 열연해 ‘조지킬’, ‘조드윅’으로 불린 배우 조승우(44)가 ‘조햄릿’이란 훈장을 하나 더 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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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으로 데뷔 24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조승우가 주인공 햄릿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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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4년 만에 첫 연극에 도전한 그는 연기하기 까다로운 셰익스피어(1564∼1616)의 비극 ‘햄릿’에서 완벽한 햄릿으로 변신해 관객 탄성을 자아낸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올해 ‘토월정통연극시리즈’의 하나로 공연 중인 ‘햄릿’(연출 신유청) 무대에서다. 예술의전당 측은 지난 9월 조승우 출연 소식을 알리며 “뛰어난 몰입도와 섬세한 감정 연기,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하는 조승우가 역사에 남을 매혹적인 ‘햄릿’을 그려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조햄릿’에 대한 기대감으로 1000석 규모 CJ토월극장 모든 회차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조승우는 2000년 임권택 감독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한 후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 드라마에 출연하며 다진 연기 내공을 ‘햄릿’ 무대에서 다 쏟아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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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요, 폐하.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어두컴컴한 무대 한 켠에서 이렇게 첫 대사를 날리며 등장하는 순간부터 존재감이 묵직하다. 덴마크 왕이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깊은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햄릿이, 왕위를 꿰찬 숙부 클로디어스가 “나의 아들,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하구나”라고 위선을 떨자 비꼬는 투로 답한다. 조승우는 이후 공연 내내 복잡한 내면과 심리적 갈등으로 감정이 요동치는 햄릿 왕자가 돼 무대뿐 아니라 객석의 공기까지 압도한다.

클로디어스가 부왕을 독살한 사실을 부왕의 유령에게서 들은 햄릿이 진실 규명과 복수에 나서고, 거짓과 악으로 뒤틀린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과정에서 널뛰는 감정을 천의 얼굴로 표현한다. 예컨대 사랑한 만큼 배신감도 깊은 어머니 거트루드나 가여운 연인 오필리아를 미친 듯 몰아붙일 때는 섬뜩하다가도 클로디어스 왕과 폴로니어스 등 그 충복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미친 척할 때는 우스꽝스러운 햄릿을 능수능란하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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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복수극이나 핏빛 비극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욕망과 양심, 정의와 불의,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 사이의 감옥에 갇혀 몸부리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룬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건 조승우의 힘이 크다. 첫 연극 무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의 팔색조 같은 연기에 객석은 긴장했다 풀어졌다 한다. 3시간에 달하는 공연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지나간다.

연극 ‘그을린 사랑’, ‘와이프’,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에서 개성 있는 연출로 주목받은 신유청(43)에게도 ‘햄릿’은 셰익스피어 희곡 중 첫 도전작이다. 얼마 전 신시컴퍼니와 국립극단이 각각 삼연·재연 무대에 올리는 등 전 세계에서 매일 1000회가량 공연된다는 ‘햄릿’을 맡는 건 모험과 다름없다. 국내외에서 숱하게 다뤄진 작품을 색다르고 돋보이게 연출하는 건 여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연출의 글’을 통해 “(오늘날에도) 수많은 ‘햄릿’이 공연되는 데엔 각각의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건 ‘햄릿’은 언제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싶을 거다”라고 했다. 이어 “뒤틀어진 시대, 악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고 사라졌던 햄릿, 자신의 짧은 생애를 한껏 불태워 악과 맞섰던 덴마크 왕자의 이야기가 부디 시대의 관절이 어긋나버린 이 세상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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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청은 햄릿이 높이 평가한 노르웨이 왕자 포틴브라스를 극 막판 비중 있게 배치하는 등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구어체로 말 맛을 살렸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CJ토월극장의 깊이와 높이를 활용한 23m짜리 삼각형 계단식 복도와 거대한 기둥 등 무대 미술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햄릿만 빛나 ‘조승우 원맨쇼’ 같은 작품으로 비쳐지는 건 아쉽다. 햄릿과 대척점에 선 클로디어스(박성근)를 비롯해 주요 배역인 거트루드(정재은), 호레이쇼(김영민), 오필리아(이은조), 레어티즈(백석광) 등은 다소 평면적이다. 이들 배역에 대한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고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조차 조승우에게 가려져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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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칼에 찔려 죽을 때조차 그다지 안타깝게 보이지 않을 만큼 희극적인 폴로니어스를 지나치게 방정맞은 인물로 설정해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폴로니우스 역을 마냥 가볍게 다뤄선 안 되기 때문이다. 명색이 한 나라의 재상인 데다 그의 죽음은 햄릿 추방과 오필리아 자살,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레어티즈의 분노를 유발하며 결국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죽고 마는 비극적 파국의 시발점이 된다.

조승우를 앞세워 화제성과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작품성을 두곤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국환(선왕 유령)과 이남희(무덤지기 외), 이강욱(로젠크란츠), 전재홍(길덴스턴), 송서유(포틴브라스 외) 등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공연은 17일까지.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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