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변 철길을 따라 옛 곡성역과 가정역 사이를 오가는 증기기관차는 곡성의 대표적인 관광거리로 손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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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영화 <곡성>에서 배우 김환희가 내질렀던 명대사를 말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도 벌써 8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는 <곡성>의 공포와 스릴러, 미스터리를 버무린 장면을 떠올리고는 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배경인 전남 곡성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음침한 분위기와는 달리, 곡성은 사랑스러운 여행지다. 특히 산과 들판에 가을이 짙게 배어들 무렵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억새꽃 흩날리는 철길을 따라 달리는 증기기관차, 붉은빛의 메타세쿼이아, (진부한 표현이지만)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평야가 가을마다 찾아오는 감수성을 한층 더 진하게 자극한다. 짧은 가을이 떠나버리기 전에, 곡성으로 떠나보자.
‘칙칙폭폭’ 시간여행, 낭만열차
섬진강 옆으로 놓인 철길을 따라 증기기관차가 내달린다. 아니, 내달린다는 표현은 조금 과하다. 천천히, 가을을 마음껏 누리면서 움직이니까. 말 그대로 ‘칙칙폭폭’이다. 리드미컬하게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효과음과 함께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는 여전히 곡성의 대표적인 관광거리로 손꼽힌다.
곡성의 증기기관차는 옛 곡성역과 가정역 사이를 오간다. 약 10㎞ 길이의 폐선로를 활용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1933년부터 1999년까지 사용한 곡성역과 옛 전라선 철길을 보존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시속 30~40㎞로 두 역 사이를 오가는 이 기차는 탑승객에게 잔잔한 향수와 가을의 정취를 한껏 선사한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다.
사실, 이 증기기관차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열차를 끄는 기관차의 동력이 증기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증기기관차 모양의 디젤엔진 기관차가 고풍스러운 객차를 이끌고 있다. 증기기관차를 빼닮은 이 기관차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이기도 한 ‘미카3형 129호’를 본떠 만들었다. 디젤엔진이어도 괜찮다. 증기기관차 특유의 부드러운 매력만큼은 여전히 느낄 수 있으니까.
참고로 가정역에서는 레일바이크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섬진강을 곁에 둔 채 나란히 달리며 은빛 가을을 한껏 만끽해 보자.
수공예품과 농산물이 가득한 토요 장터 기차당뚝방마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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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넘치는 토요 장터 ‘기차당뚝방마켓’
섬진강기차마을과 인접한 곡성천 둑길에는 매주 토요일 플리마켓이 열린다. 노란 천막을 따라 수공예품, 갓 수확한 농산물, 이를 이용해 만든 먹거리가 즐비하게 이어진다. 곡성천 방향으로는 이곳에서 구매한 먹거리를 편안하게 맛볼 수 있도록 테이블을 준비해 두기도 했다. 소풍 온 기분을 한껏 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공예품이다. 1인 창작자가 정성껏 만든 수공예품이 종류별로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곡성의 특산물인 멜론, 토란 등을 주제로 한 소품, 천연 색소로 염색한 원단으로 만든 모자와 앞치마, 실험 정신 투철한 작가가 빚은 도자기 등 다양한 수공예품이 토요일마다 곡성 기차당뚝방마켓을 찾아온다. 곡성 지역에 사는 작가들도 많지만, 광양이나 대전, 서울 등 멀리서 이곳까지 찾아오는 판매자들도 많단다. 뚝방마켓은 곡성오일장으로도 이어진다. 가을에는 지역에서 생산한 밤, 대추, 호박 등 지역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자.
가을날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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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맛집, 메타세쿼이아길
가을의 곡성은 드라이브하기에 더없이 좋다. 드넓은 들판, 탁 트인 하늘, 맑은 공기까지 어우러지며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내내 기분 좋은 느낌을 선사한다. 특히, 읍내에서 외곽으로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약 800m의 짧은 거리지만, 양옆으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모습은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차창을 열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달려보자.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도로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구례로 향하는 17번 국도, 청계동계곡 방향으로 이어지는 840번 지방도 또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좋은 길이다.
곡성 특산물로 만든 멜롱살롱의 ‘멜론주스’와 ‘멜론라떼’. |
달콤한 멜론의 향연 ‘멜롱살롱’
곡성은 국내의 대표적인 멜론 생산지다. 일교차가 큰 분지 지형이 당도 높은 멜론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다. 신선한 멜론을 산지에서 직접 맛보는 방법이 있다. ‘멜롱살롱’으로 향하자. 곡성의 멜론을 내세운 카페로, 멜론을 활용한 여러 디저트와 음료를 취급한다.
멜롱살롱은 낡아 쓸 수 없게 된 멜론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다. 곡성의 주요 멜론 산지이자, 멜롱살롱이 자리한 금예마을의 농가로부터 식재료를 공수해 카페를 꾸리고 있다. 금예마을은 한 덩굴에서 한 개의 멜론만을 선별해 키우는 농법으로, 당도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멜롱살롱의 대표 메뉴는 ‘멜론주스’와 ‘멜론라떼’다. 멜론을 듬뿍 넣고 갈아서 만드는 음료로,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을 자랑한다. 곡성 멜론의 당도가 높아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음료를 주문하면 금예마을에서 생산된 생멜론 한 조각을 함께 받는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두가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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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내려다보이는 한옥 카페, 두가헌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섬진강을 한옥에 앉아 감상하고 싶다면 문화공간 두가헌이 제격이다. 두가헌은 2012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주관한 ‘제2회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건축 부문 국토해양부 장관상을 받은 건축물이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이 한옥은 넓은 앞마당, 아늑한 중정, 사방이 개방된 실내 공간 등이 인상적이다.
두가헌은 카페로 운영된다. 그 규모만큼이나 독립적인 공간이 많아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한옥 고유의 특성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방문객이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실내에는 분재를 비롯해 소소한 작품이 놓여 있기도 하다. 두가헌이 스스로 ‘갤러리’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곡성에서 나는 팥으로 만들고 제철 과일을 얹어 완성하는 수제 팥빙수가 인기 메뉴다.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찾는 이가 많을 정도로 고소한 향과 달콤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직접 담근 청으로 내는 과일 차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두가헌에서 한옥의 정취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여유롭게 누려 보자.
‘논 뷰’ 카페 미실란과 함께 자리한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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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빚어낸 식탁, 미실란
미실란은 농부 과학자 이동현 대표가 꾸려나가는 공간이다. 국내 최초로 유기농 발아현미를 개발하고 1000여종에 달하는 농작물을 연구하며 직접 재배하는 인물이다. 현재 곡성읍 폐교를 정돈해 식당(현재 확장 공사 중으로 휴업)과 카페, 농산물 판매장, 갤러리, 책방 등을 운영한다.
카페 앞에는 직접 재배하는 논이 있다. 이 대표가 연구하는 여러 품종이 이곳에서 자란다.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다는 식약동원의 철학을 담아 농작물이 어떤 영양분을 가졌는지 지금도 면밀히 연구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논은 가을을 맞아 황금빛으로 물들었지만, 품종마다 다른 구석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렇게 연구해 곡성 곳곳에서 재배한 농작물은 소포장해 판매한다.
생태 책방을 표방하는 ‘들녘의 마음’은 소설가 김탁환과 이동현 대표가 합심해 선별한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생태와 지역, 환경, 청년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책 500여종을 전시, 판매한다.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책이 많을 것이다. 카페에서는 로컬 곡물로 만든 따뜻한 라테를 즐기며 황금빛 들녘과 푸른 하늘을 감상해 보자.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들판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정원에서 키우는 채소와 발효 중인 다양한 장류를 담은 장독대를 보며 산책하는 것도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곡성 | 글·사진 김정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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