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도시 속 쉬어갈 자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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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 가야지. 그럴 돈 모아서 집 사야지. 결심해보지만 자동으로 몸이 그쪽으로 향한다. 간판을 보면 충동을 이길 수 없다. 목이 말라도, 마르지 않아도 일단 그냥 들어가보고 싶은 곳이다.
“어서 오세요-”
카페는 누구나 갈 수 있다.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이 있고 겨울엔 따뜻한 히터가 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바깥과 달리 벌레나 바람도 없다. 음료수 한 잔 살 돈만 있으면 쾌적한 공간과 시간을 살 수 있다. 시간제한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오래 머물 때 음료 한 잔을 더 시키는 건 어디까지나 체면 때문이다).
“주문하시겠어요?”
요즘 카페의 메뉴는 대부분 비슷하다. 굵은 글씨로 ICED AMERICANO, CAFE LATTE, CAFE MOCHA 하며 영어가 쓰여 있고(엄밀히 말하면 이탈리아어), 옆에 눈곱만한 크기로 한글이 쓰여 있다(아예 한글을 안 써놓는 가게들도 있다. 그런 가게들은 ‘1인 1음료 주문해주세요’는 열심히 한글로 써놓는다). 가격은 대체로 5.0, 6.0 하고 약식으로 쓰여 있다. 오천원이면 5000원이지, 5.0은 대체 어느 나라 돈이란 말인가. 모르는 척 5원을 내밀고 싶은 심정이다.
맨날 카페에 와도 맨날 메뉴로 고민한다. 뭘 먹지? 역시 아메리카노인가? 좀 딴 걸 먹어보고 싶은데…. 하지만 카페라테는 우유가 싫고 카페모카는 달아서 싫다. 그렇다고 차를 시키면 물에 티백만 풍덩 빠뜨려서 나올 것 같다. 스무디나 과일주스를 시키려니 당 때문에 부담스럽다. 고민을 아무리 해봐도 역시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가 탄생했고 미국 사람들은 거기에 물을 타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그리고 몇십 년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전국을 제패한다.
“드시고 가시나요?”
“아니요, 여기서 먹을게요.”
“편하신 곳 앉으시면 돼요.”
편하신 곳은 어디인가. 사실 아까 카페에 들어올 때부터 창가 좌석이 빈 것을 봤다. 그래서 들어온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일단 바깥이 보이는 자리를 선호한다. 그 창밖 풍경이 좋든 구리든 말이다. 탁 트여 있으면 최고이고, 그게 아니라면 약간의 초록이라도 보이면 좋다.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기준은 다 비슷해서 보통은 창가부터 자리가 차고, 그다음이 벽 쪽이다. 사방이 남에게 노출되는 자리는 마지못해 앉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자리를 늘 찾는다고 한다. 주위 전망을 볼 수 있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으나, 내 위치는 접근이 어려워 위험을 바로 대비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카페에서 위험이 닥칠 일은 없지만 이런 이유에서 창가 자리에 집착한다고 핑계를 대본다.
때론 선술집처럼, 때론 도서관처럼…‘편하신 곳’ 앉아 ‘나오신’ 아아메 한 잔 호로록
‘프림 하나 설탕 둘’ 옛 다방 시절부터 유구했던 인기, 단지 ‘커피가 좋아서’만은 아니겠지
위잉- 원두 가는 소리, 치익 하고 증기 빠지는 소리, 탕탕하며 울리는 커피 원두 찌꺼기 버리는 (전문용어로 ‘노킹’이라고 한다고) 소리. 제법 큰 소음이지만 이것 역시 카페의 일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아아메’가 나오셨다니 얼른 가서 모셔 와야겠다. 이상한 존댓말이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왜 반말을 하느냐고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불친절한 사람으로 찍히느니, 차라리 무식한 사람이 되는 게 편하다는 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켠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그래도 아이스가 좋다. 쓰고 시원한 맛. “캬-” 소리라도 내야 할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속이 싹 내려가는 기분이다. 옛날엔 아아메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내가 어릴 때는 카페보다 다방이 훨씬 많았다. 다방의 주메뉴는 일명 ‘다방 커피’로 불리는 믹스커피다. 인스턴트 커피와 프리마, 설탕을 배합한다. “프림 하나에 설탕 둘”같이 내 맘대로 커스텀하는 것도 가능했다. “카페라테에 우유는 오트밀크로 변경하고 바닐라 시럽 추가해주세요”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믹스커피는 뜨거운 것만 가능했고 시원한 커피는 ‘냉커피’로 따로 분류됐다(냉커피는 집집마다 레시피가 달랐다). 이 외에 쌍화차, 율무차를 팔고 오렌지주스, 콜라 같은 기성 제품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주로 파르페나 아이스크림을 시켜줬다. 맨 아래에는 콘푸로스트 시리얼을 깔고 그 위로 딸기, 바닐라, 초코 아이스크림 세 스쿠프를 올려 초코 시럽을 뿌리고 웨하스와 빼빼로를 꽂아서 장식한 파르페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옛날 다방의 파르페를 떠올리자 곧 그때의 분위기도 생각난다. 이름은 보통 두 글자로 장미다방, 을지다방 하는 식으로 총 네 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참고로 을지다방은 아직도 서울 을지로에서 영업 중이다). 요즘 카페가 대부분 1층에 있고 전면 유리를 써 내부가 환하게 보이게 한 것과 달리 다방은 천장이 낮고 어두컴컴했다. 창문이 아예 없는 지하 다방이 많았고 창문이 있어도 유리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글자 때문에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좌석 사이사이에도 파티션을 세우는데 주로 커다란 화분이나 수족관을 놓았다. 그런 장치들 덕분에 지금의 카페들보다 좀 더 프라이버시가 보장됐다. 그래서인지 처음 카페에 갔을 때 길 한가운데 앉아 있는 기분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방 시대에도 직접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는 집들이 있었다. 이런 집들은 다방이 아닌 ‘커피전문점’이라고 불렸다. 매장 인테리어에는 짙은 갈색을 많이 썼고 언제나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주인은 40~50대의 안경 낀 남성일 때가 많았다. 커피 좀 좋아한다 하는 사람들은 옛날에도 다방보다 커피전문점을 찾아다녔다.
2000년을 기점으로 현대식 카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주문을 받으러 오고 음료를 가져다주는 대신 손님이 직접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음료를 받아 가는 시스템이 생겼다. 서울부터 다방은 점점 사라져갔다. 달큼한 다방 커피 대신 쓰고 개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전 국민의 입맛을 평정했다(아직도 다방 커피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바닐라 라테’가 그 맛과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현대식 카페가 막 생기던 초창기에는 젊은 사람들, 특히 20대 여성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들에겐 밥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시는 ‘된장녀’라는 멸칭이 붙었다(남자들이 먼저 그랬어도 ‘된장남’이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앞서나간 사람들이다. 요즘은 아저씨들은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카페를 이용한다. 어느 카페나 연령대가 다양하다. 동네 카페에선 모임을 하는 것도 자주 본다. 거의 동네 사랑방이나 지붕 달린 정자나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부산의 한 카페에서 재밌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내 건너편 자리에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성이 앉았다. 시간은 오후 9시, 카페에 오기엔 다소 늦은 시각이다. 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음료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받아 와 각자 앞에 커피를 놓았다. 둘은 커피잔을 들고 가볍게 ‘짠’을 했다. 저게 술잔이라면, 여기가 카페가 아니라 선술집이나 고깃집이라면 더 어울릴 분위기다. 둘은 한 모금씩 홀짝홀짝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정치 얘기를 했다가 동창 얘기를 했다가 자식 얘기, 건강 얘기까지 주제가 광범위하다.
그러다 한 어르신이 테이블 한쪽에 치워둔 쟁반에 자기가 먹던 커피잔을 뒀다. 아마도 테이블에 커피 얼룩이 생기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그러자 다른 어르신이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왜 커피를 거기에 둬” 하며 다시 상대방 앞으로 커피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커피잔을 들어 ‘짠’을 요구했다.
이 둘 사이에서 커피는 완벽하게 술잔을 대신하고 있었다! 마치 잔을 빨리 비우지 않는 사람을 타박하거나 술잔을 치워놓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어르신들은 다방에서 커피전문점, 카페까지 모든 변화를 경험했다. 내가 나이가 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지금의 카페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더 있나? 그때가 되면 스타벅스가 지금의 을지다방처럼 레트로 명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도 ‘실내 공간에서 커피와 앉을 곳을 제공한다’는 목적 자체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카페를 닮은 그 무언가는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 영원할 것이다.
인간은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평화롭게 있을 수 있다. 신기한 일이다. 낯선 자를 극도로 경계하는 침팬지들이라면 벌써 커피잔을 던지고 쟁반을 내동댕이치며 싸움이 일어났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부족끼리 한 공간에서 각자 음료를 즐긴다. 서로 인사하지 않는다.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 음료를 나눠 마시지도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용납하며 함께 잠시 존재한다.
“또 오세요-”
카페를 나선다. 약간의 에너지가 차오른 듯하다. 이제 또 걸어볼까. 다리가 아파도 괜찮다. 언제든 내 앞엔 쉬어갈 카페가 있을 테니.
▲이다 | 일러스트레이터
저서로는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걸스토크><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이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이다 |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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