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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경력 교사일 때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수업을 잘해야 하는 건 차치하고, 기본으로 대인관계에 에너지를 많이 쓰잖아요. 감정도요. 한 7~8년쯤 가르치다 보니까 우울증 비슷하게 오더라고요.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보고 싶지 않아서 화장실에 앉아 있기도 했어요. 10분 동안. 그때만이라도 좀 혼자 있고 싶어서요. 그 정도면 심한 건데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수업을 안 할 수는 없었죠. 교실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집에 가면 말을 안 해요. 남편에게 잔소리도 눈으로 하고.”
“우울증으로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한국어교육 경력 19년. 민영(가명)씨는 한국어교원 1급으로 대학에서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비전임 교원이다. 20대에 학부 졸업을 앞두고 “한국에서도 일하고 밖에 나가서도 내 밥벌이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이 길을 만났다. 석사과정을 밟아 2급 자격을 따서는 바로 일했다. 몇해 전에는 더 공부해 박사 학위를 땄다. 마흔을 앞두고 “이렇게 그대로 살아도 되나” 싶던 때 자신에게 변화할 계기를 주었다.
“이쪽 일자리가 대학교 부설 어학원(센터) 수업이 제일 많아요. 제가 시작할 때는 2급 자격이면 됐는데, 지금은 1급이나 박사를 우대한다는 조건이 붙으니까 아무래도 학력 인플레가 심하죠. 학교에서 일하는 건 대부분 그렇더라고요.”
박사 공부 뒤, 일을 선택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졌다. 자격 조건이 안 돼서 지원하지 못하는 일은 없으니. 지금은 어학원 수업이 아니라, 학부에서 외국인 학생을 위한 교양 수업과 한국어 집중 과정 수업을 맡았다.
“2020년 코로나 이전까지는 유학생 중 어학연수생 비율이 더 높았는데, 요즘은 대학 운영이 힘드니까 학생을 빨리 학부로 끌어오려고 하잖아요. 입학에 필요한 한국어 실력 기준을 완화하다 보니, 학생들이 전공 수업을 들을 실력이 안 돼요. 그래서 1, 2학년 때 이런 보완 수업이 많아지는 추세예요.”
다양한 문화와 언어로 살아온 학생들에게 “한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명사, 대명사, 수사, 조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에 접사, 의존명사, 줄어든 말 등의 필수 어휘와 보조사, 부사격 조사, 관형사형 어미, 선어말어미, 연결어미, 종결어미, 복합 표현 등의 필수 문법을 가르치는 일도, 이 과정을 지나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시도하게 하고 지도하는 일도 교사가 준비하고 채울 몫이 크다.
“한국에서 하는 한국어 수업은 학습자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한국어로 수업하는 게 원칙이에요.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한테 한정된 시간 안에 명시적으로 전달하고, 최대한 오류를 줄이고, 새로 배우는 걸 잘 입력하게 해줘야 해요. 학습자의 특성까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망치지 않는 수업이 돼요.”
고등교육법상 시간강사에게는 수업 시수가 한 학교에서 주 6시간으로 한정돼 있다. 민영씨는 4개 대학에 출강하며 총 19시간을 수업한다. 여기서 저기로 이동이 잦고, 이동 시간이 길다. 그나마 경력이 돼, 2시간씩 사흘 나갈 수업을 하루로 몰도록 “배려”받거나 협의한다. 수업은 사흘 나가지만, 수업교재·부교재·부자료 제작, 교안 작성, 수업 준비, 시험 문제 출제와 평가, 성적 산출 등 수업 시간 밖에서 해야 할 일을 고스란히 집으로 옮겨오게 돼 노동이 연장된다. 추가수당은 없다. 나라에서는 강사의 처우를 개선한다 했지만, 나아진 게 없다.
“예전에 큰 대학 부설 어학원에서 일할 때 20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4대보험 대상자가 아니었던 이유가 20시간을 ‘근로소득’이 아니라 ‘사업소득’으로 받아서예요. 당시에는 강사가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거죠. 지금은 어학원에서 강사에게 12시간, 8시간으로 수업을 쪼개 줘요. 학교가 주휴수당과 4대보험을 회피하는 거죠. 한국어교원만 아니라 시간강사 전체로 넓혀 봐도, 학교에게 시간강사는 그냥 그 시간에 수업하는 사람이지, 그 외 더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학교 어학원에서 일하는 강사도, 정규 수업 강사인 민영씨도 똑같이 초단시간 노동자. 4대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도, 방학 때는 수입이 끊기는 것도 그대로. 민영씨는 방학 동안 학교 밖에서 온라인으로 비학위 자격 취득 과정 강의를 하거나, 학기 중에 벌어놓은 돈을 헐어 쓴다.
“저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거든요. 남편 수입에 내가 이 일을 이 정도로 하면서 집안 경제를 운영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이 일을 한다면 수입 자체가 부족할 것 같아요. 일자리의 안정성도 떨어지고요. 배우자가 경제활동이 안정적이라면 이 일을 장점으로 보는 분도 있어요. 한국어교원 대부분이 여성인데, 출산·육아로 일을 그만둬도 경력이 있으면 돌아오기가 비교적 용이하고, 일단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어디예요? 수업만 마치고 와서 아이를 돌보기도 하고. 이런 패턴에 만족하는 분도 있죠. 본인 상황에 따라서. 일터가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요.”
“자기 자신 보호해야”
민영씨는 한 수업에 학생 마흔명을 만난다. 어학 수업은 “스무명 넘으면 불가능하다”는데, 학교는 수업의 질을 보장할 적정한 인원을 고려하지 않는다. 민영씨는 19년 경력으로 “주어진 시간 안에 들어갈 만하게 내용을 구조화해서 잘 전달”하려고 한다. 그곳엔 열심히 필기하면서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는 학생도, 피곤해 꾸벅꾸벅 조는 학생도 있다. 밤에 배달 알바 하는 베트남 학생, 주말에 이삿짐 알바 하는 몽골 학생이다.
“내가 내 밥을 벌어 먹는 게 감사한 일이라는 걸 요즘 더 생각해요. 내가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컸다는 것도요. 예전에 내가 교실에서 순간순간 되게 불안했는데, 지금은 어떤 감정을 겪든 그 감정을 겪는 나를 볼 수 있는 수준이 됐어요. 교사는 수업을 운영하는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는 보호해야 장기적인 직업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너무 학습자 쪽에만 가 있으면 제가 그때 우울증 걸렸을 때처럼 힘들고, 자기 돈벌이로만 생각하면 학습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내 수업이 어느 부분에서 부족한지 잘 안 보기가 쉬우니까요. 어디선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매번 고민하고 긴장된다면 잘하고 계신다고, 당연한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배우도 작품 할 때마다 떨린다잖아요. 수업이든, 글이든, 연기든 자기 안에 있는 걸 남한테 펼쳐 보여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당연한 경험인 것 같아요.”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박수정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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