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수가 부족하다고 이태 연속 외국환평형기금을 털어서 쓰겠다는 것은 악수다.[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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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0조원에 이르는 세수 펑크를 막으려 외국환평형기금을 4조~6조원 헐어 쓰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택도시기금에서도 2조~3조원을 가져다 쓰기로 했다. 세수가 일시적으로 부족하면 다른 데서 돌려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용하겠다는 기금의 성격이다.
외국환평형기금은 환율이 급등락하면 달러나 원화를 사고팔아 환율을 안정시키는 '외환 방파제' 성격의 국가 비상금이다. 이미 지난해 같은 이유로 20조원을 전용했는데 올해 또 손대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국환평형기금 활용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는데 한달여 만에 이를 뒤집었다.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위협하는 등 고공행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가 예상보다 좋아 금리인하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고, 최근 우리나라 수출이 부진한 영향이다. 외환위기까지 겪은 나라에서 세수가 부족하다고 이태 연속 외국환평형기금을 헐어 쓰겠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악수惡手다.
주택도시기금 전용 발상도 명분이 약하다. 주택도시기금은 아파트 청약통장 가입자들이 내는 돈으로 조성한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에 써야 할 주거복지 재원이다. 서민층 주거 불안 해소와 집값 안정을 위해 늘려도 시원찮은 판에 이를 가져다 쓰겠다는 발상은 염치없다.
두 기금 외에도 정부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4조원, 국유재산관리기금에서 3조원을 끌어다 쓰겠다고 한다. 이런 비정상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2년 연속 돌려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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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수 결손 예상액 30조원을 채울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에 줄 교부세와 초ㆍ중ㆍ고교 교육 재원인 교육재정교부금을 6조5000억원 삭감하고, 나머지 7조~9조원은 예정된 사업에 돈을 쓰지 않는 불용不用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가 감세 기조는 유지한 채 용도가 정해진 기금을 끌어다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정부와 정책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회계적으로 금융성 채무를 증가시키는 국채 발행을 하지 않을 뿐 나라살림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목적과 용도가 정해져 있는 기금을 임의로 전용하는 것은 기금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일반회계와 기금 간 거래를 통해 메우는 돌려막기도 결과적으로 적자성 채무를 늘려 국가채무의 질을 악화시킨다.
그럼에도 정치적 이유로 '감세 카드'를 잇따라 꺼내며 세입 기반을 약화시켰다. '한시적'이라던 유류세 인하 조치가 3년 넘게 연장되며 유류세를 포함한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가 부족해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연기, 대주주 배당소득 분리과세 허용, 최대주주 등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 금융소득종합과세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허용도 고소득ㆍ고자산가에게 혜택이 크게 돌아가는 세수 감소 요인이다.
주택도시기금은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에 써야 할 주거복지 재원이다. 이를 가져다 쓰겠다는 발상은 염치없다.[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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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역성장(-0.2%)에 이어 3분기 경제성장률도 전 분기 대비 0.1%에 그쳤다. 중국경제 성장률 둔화와 미국 대통령선거 이후 정책 변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중동 분쟁 격화 우려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판에 정부가 꼼수 대응에 의존하면서 경기 대응력을 갉아먹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채무가 급증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재정 건전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올해 세수가 지난해보다 33조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지출이 수입보다 92조원 많은 적자예산을 편성했다. 병사 월급을 135만원에서 165만원으로, 0세 아동 부모 급여를 월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선심성 예산을 대거 포함했다.
세수 결손을 충당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세금을 더 거두든지(증세), 줄어드는 세수에 맞춰 세출을 줄이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감액추경)하든지, 국채를 발행해 세수 부족액을 메우든지 해야 한다. 어느 정부든 세수 추계 정확도를 높이고, 여야 정당이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는 선심성 (공약)정책을 자제하는 것은 기본이다.
국회 동의 과정을 회피할 요량으로, 정부 재량으로 할 수 있는 기금 전용이 잦으면 그렇지 않아도 낮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정부 신뢰도를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증세도, 국채 발행도 못 하겠다면 선심성 예산을 도려내는 감액 추경을 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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