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골자로 한 의료 개혁이 의료 파탄으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지난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의대 증원을 발표한 지 8개월 만이다.
처음 정부의 의대 증원은 다수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하며 집단 행동에 나서고,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며 반발하자 의료 시스템 붕괴를 우려하는 부정 여론이 커졌다.
이미 의대 교육 파행은 되돌릴 수 없게 됐다. 대다수 의대 1학년 학생들의 휴학으로 사실상 의대 한 학년이 없어진 상태다. 본과 4학년도 대다수가 수업을 듣지 않아 당장 내년 의사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올해 9월 시행된 의사국가시험 실기에 예년의 10분의 1 수준만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의사국시를 추가 실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이 의사 자격을 취득하는 문제가 생긴다.
동맹 휴업은 절대 승인하지 않겠다던 정부가 최근 의대생들의 휴학을 조건없이 승인함으로써 의대 증원을 놓고 벌인 의-정 갈등에서 의사 단체가 주도권을 쥐게 됐다. 의대생 휴학 승인은 집단 유급 사태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의대생이 돌아와도, 돌아오지 않아도 문제다. 올해 휴업했던 의대 1학년생들이 내년 3월 복귀하면, 내년 신입생 4500명과 합친 최대 7500명이 1학년 수업을 함께 들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이들을 수용할 강의실과 기자재, 교수 부족 등으로 의대 교육이 파행을 겪을 수 있다. 이들은 의대 수업은 물론 전공의 수련까지 향후 10년간 함께하면서 교육도 수련도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휴학 승인시 등록금을 돌려줘야 해 대학들은 재정난도 걱정해야 한다.
이에 의료계는 한 발 나아가 내년 의대 신입생 정원을 조정하지 않으면 의학교육의 파행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며, 이미 진행 중인 내년 신입생 정원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대 휴학생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대량 유급·제적 사태로 번져 의학교육 파행이 벌어진다.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리 불능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대학들은 1년 4학기제, 분반, 온라인 강의 확대 등 대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제대로 된 강의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특히, 내년 의대 정원이 크게 증가한 지방 의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문제의 발단은 정부가 당사자인 의료계와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의대 증원을 밀어부쳤기 때문이다. 아무런 협상력도 보여주지 못한 정책 당국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의대 증원 불가를 못 박아두고 정부와 대화를 거부한 의사단체 또한 공동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의사 단체에는 지금의 의대 교육 파탄을 유도하거나 방관한 죄를 물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정원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학생들만 피해를 봤다. 자의반 타의반 휴학을 결정한 학생들은 물론,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의대 증원과 정원 조정 여지가 생기면서, 의대를 지원하지 않은 대다수 수험생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이제라도 의대 교육 파행을 막기 위한 논의를 즉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의·정 중심 협의체 구조로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반복할 가능성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의대 증원의 근거인 미래 의사 수요와 공급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도출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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