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6 (수)

“고통스럽기에 봐야 한다” 우크라 출신 기자가 목격한 전쟁 현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공격한 현장을 AP통신 취재팀이 20일간 기록한 영상이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공격한 현장을 AP통신 취재팀이 20일간 기록한 영상이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 시내를 러시아 탱크가 포위한다. 탱크에 적힌 ‘Z’는 ‘전쟁’을 뜻하는 러시아어다. 탱크가 아파트를 파괴하고 포탄이 날아와 병원에 떨어진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온몸을 떨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생지옥을 촬영하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기자에게 ‘기레기’라고 욕설하며 화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AP통신 영상기자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는 물러서지 않는다. “부탁합니다. 이걸 기록하지 않으면 안 돼요.”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6일 극장 개봉한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을 포위하고 공격한 현장을 AP통신이 취재한 영상이다. 취재팀이 마리우폴을 탈출한 3월15일까지 20일간을 담았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출신 영화 감독이자 영상기자인 체르노우, 사진기자 에우게니이 말로레카, 프로듀서 바실리사 스테파넨코 등이 목숨을 걸고 기록한 장면들이다.

AP통신 취재팀은 ‘기록의 전쟁’에 뛰어든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에는 눈을 의심할 만큼 충격적인 현장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특히 병원을 촬영한 영상에선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직관’하게 된다. 포격당한 아이가 혼신의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숨지자 의사는 취재진을 불러 절규한다. “망할 놈의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이 아이의 눈을 똑똑히 보여주세요.”

의료진은 전기·난방·식수가 끊긴 환경에서 생명을 살리려고 악전고투한다. 어머니는 “왜, 왜, 왜”라고 되뇌며 18개월밖에 살지 못한 아들의 시신에 마지막 키스를 한다. 2주가 지나자 병원에 시신이 너무 많아져 결국 구덩이에 집단 매장한다. 간호사가 러시아군에게 저격당해 쓰러지기도 한다. 러시아 폭격기를 피해 도망치는 시민들, 포위망을 뚫으려 교전하는 우크라이나군, 상점 주인의 면전에서 물품을 도둑질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기록했다.

경향신문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공격한 현장을 AP통신 취재팀이 20일간 기록한 영상이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공격한 현장을 AP통신 취재팀이 20일간 기록한 영상이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현실적으로 참혹한 94분짜리 영상에 체르노우의 담담한 내레이션이 깔린다. 체르노우는 관객에게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기를 요구한다. “보기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봐야 한다. 고통스럽기에 봐야 한다.” 그는 사건 현장과 감정적인 거리를 두지 않고 조국이 공격당한 기자의 관점에서 적극 해설한다. 종군기자의 고독감, 불안감, 공포감도 여과 없이 고백한다. “딸들이 보고 싶지만 내게는 (편집자들과 통신하는) 위성 전화기뿐이다.” 포격에 집을 잃고 오열하는 여성 앞에서 카메라는 난감해하며 무력하게 흔들린다. “계속 촬영해야 할지, 멈추고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취재팀은 취재 영상을 위성 전화기로 전송했지만 러시아군의 포위가 강화되면서 통신이 끊어진다. 결국 취재팀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자동차 좌석 밑과 생리대 등에 하드디스크를 숨기고 러시아 검문소 15곳을 통과한다. 마리우폴은 침공 86일만인 5월20일 러시아에게 완전히 점령당했다.

‘사실의 힘’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AP통신이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동에서 탈출하는 임신부의 사진을 보도하자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는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배우를 동원해 제작한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P통신의 취재 영상은 러시아의 주장을 통렬하게 반박했다.

AP통신 취재팀은 지난해 미국 최고 권위의 언론상인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받았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올해 미국 최고 권위의 영화상인 오스카상(아카데미상)도 수상했다.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초의 오스카상이었다. 체르노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를 찍을 일이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이 영광을 러시아가 수만 명을 죽이지 않은 세상과, 고국과 시민을 지키다 감옥에 갇힌 군인들이 풀려나는 세상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공격한 현장을 AP통신 취재팀이 20일간 기록한 영상이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공격한 현장을 AP통신 취재팀이 20일간 기록한 영상이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짧게 살고 천천히 죽는 ‘옷의 생애’를 게임으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