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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무능했던 왕[이은화의 미술시간]〈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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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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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현명한 왕은 누구일까? 솔로몬이라는 답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무능했던 왕은 누굴까? 챗GPT에 물었더니, 조선의 연산군, 로마 네로 황제, 프랑스 루이 16세 등을 알려준다. 루이 16세는 어쩌다가 가장 무능한 왕의 상징이 되었을까?

루이 16세는 18세기 프랑스의 마지막 절대 군주다. 성품은 온화했으나 정치적 감각이 없고 나약해 지도자로서는 많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세기 프랑스 궁정 화가 앙투안 프랑수아 칼레가 그린 ‘루이 16세(1779년·사진)’는 집권 5년 차에 든 젊은 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275cm 높이의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이 초상화는 루이 16세의 공식적인 이미지로 절대 군주로서 왕의 위엄과 품격을 강조하고 있다. 호화로운 실내를 배경으로 화려한 의복을 입은 왕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서서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보석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벨벳 로브에는 프랑스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금실로 수놓아져 있어 왕실의 화려함과 부유함을 강조한다. 왕은 거추장스러운지 왕관을 의자 위에 내려놓았고, 허리춤에는 황금 칼을 차고 있다. 왕좌를 장식한 둥근 황금판에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이 새겨져 있다. 왕은 스스로 강인하고 정의로운 군주라 여기며 이 그림에서처럼 이상적인 군주로 보이길 바랐을 테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왕은 민중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세금 개혁 실패와 재정 위기 방치 등으로 국민의 불만과 분노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결단력 부족과 우유부단함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1793년 끝내 왕권을 상실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부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사치의 아이콘이 돼 국민의 미움을 받았기에 남편과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루이 16세는 국민도 가족도 자신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왕이었던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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