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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토)

엿이나 찹쌀떡 사양합니다… 차라리 ‘무관심’을 선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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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수능시험 D-5

센스 있는 선물은?

조선일보

합격 기원 선물로 팔리는 ‘붙어쓰’. 사탕, 초컬릿 등이 들어 있다.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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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의 훈훈한 기운은 물러가고 칼바람이 살을 에는 것 같다. 수능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D-5. 주변에 수험생이 있다면 ‘수능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다.

요즘은 어떤 선물이 인기일까. 초록창으로 수능 선물을 검색해 봤다. 첫 화면에 뜨는 것은 ‘힘내엿’. 국내산 곡물로 만든 무설탕 엿이라고. 자양강장제와 숙취 해소제 흉내를 낸 원통 모양의 ‘붙어쓰’ ‘합격 컨디션 파워’ 같은 제품도 상단에 떴다. 호박엿과 쌀과자, 젤리, 곡물바, 사탕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 한다. 수험생 이름을 넣어서 “합격보약 OOO! 보약 먹고 힘내서 합격하세요”라는 식으로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또 한의사가 만들었다는 수능엿, 찹쌀떡과 초콜릿으로 꾸려진 수능 선물세트 등이 이어졌다. 엿과 떡, 클래식이 여전히 강세인 것일까.

01학번인 이민석씨는 “나 때는 잘 풀라고 휴지, 잘 찍으라고 포크, 잘 보라고 거울 같은 걸 선물받았는데, 요즘 애들은 휴지·포크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했다. 지난해 수험생 조카에게는 엿과 용돈을 선물했다고 한다. 레트로 인기에 힘입어 이 같은 ‘복고 수능 선물’도 더러 보인다. 스타벅스도 정답만 잘 찍으라는 응원을 담았다면서 ‘럭키 사이렌 포크 세트’ 등을 지난해 수능 선물세트로 출시했다.

수험생들이 바라는 선물은 엿이나 떡이 아닐 수 있다. 대학교 1학년인 이지후씨는 “엿도 떡도 안 먹는다. 작년에 받은 것들은 곧장 냉동실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센스 있던 선물은 손목시계와 텀블러였다”고 말했다. 수능시험장에는 전자시계 반입이 금지된다. 시침과 분침이 있는 아날로그 시계가 필요한데, 서울대 로고가 박힌 저소음 손목시계가 반가운 선물이었다고. 또 당시 선물받은 유명 브랜드의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담아갔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기념품몰 관계자는 “1만5000원짜리 시험용 손목시계는 평소에도 잘 팔리는 편인데, 수능을 앞두고는 2.5배 정도로 판매량이 는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고가 박힌 문구류와 핫팩, 초콜릿 등이 포함된 ‘수능세트’도 잘 팔린다.

대학생 이영지씨도 “수능 이후를 생각해 지갑을 채워주신 분들이 가장 고마웠다”고 말했다. “연세대 티셔츠 선물을 받았었는데 그때는 잠시 기분이 좋았지만 그 학교에 떨어졌어요. 지금은 어디 처박아 뒀는지 모르겠네요,” 고3 수험생을 둔 조현민(48)씨는 “먹고 얹히면 어쩌려고 애한테 찹쌀떡을 주겠느냐”며 “합격 기원 메시지도 애한테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받고 싶은 선물’ 설문조사 결과가 대부분 그렇듯, 수험생들에게도 환금성 좋은 선물이 가장 무난한 선택지라고 한다. 현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화장품 편집숍 ‘올리브영’ 상품권, 배달앱·커피 체인점 상품권 등이 최근 가장 인기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남학생들에게는 구글플레이 기프트카드 등도 반응이 좋다고.

한편 ‘무관심’을 선물해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수능이랍시고 괜히 고개를 드는 과한 관심과 오지랖이 오히려 압박이 된다는 것. 주부 정모(46)씨는 “동호회 멤버들이 고3 엄마라고 신경 써서 식사 대접을 해줬는데 부담만 됐다”며 “우리 아들 성적이 기대되는 상황도 아닌데 그냥 모른 척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수험생에 선물을 줄 때도 ‘시험 잘 보라’는 말은 삼가고 다정한 안부 메시지를 전하는 정도가 안전하다.

더욱이 올해는 ‘의대 정원 확대’ 여파로 20년 만에 ‘N수생(재수 이상 수험생)’이 크게 늘었다. 이번 수능에 응시하겠다며 원서를 낸 N수생은 18만여 명으로 20년 만에 최대 수준. 첫 수능을 치르는 고3과 부모들은 불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조용히 마음으로 응원하고, 시험을 마친 뒤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것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조선일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엿새 앞둔 8일 경기 수원시 효원고등학교 담벼락에 수험생을 격려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효원고는 수험생을 응원하는 문구를 매년 담벼락에 적고 있으며 올해의 문구는 '묵묵히 가던 길에 꽃이 가득 필 거야'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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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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