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집밥 대가 우정욱의 수능 도시락 싸는 법
우정욱 수퍼판 대표가 제시한 수능 도시락 2종. 왼쪽 도시락은 귀리를 조금 넣은 흰밥, 얼갈이 된장국, 달걀명란찜, 소시지 야채 볶음, 바싹 불고기, 김치 버터 볶음으로 구성했다. 오른쪽 도시락은 달걀 새우 볶음밥, 소고기 뭇국, 치즈달걀말이, 단무지 무침, 스리라차 소시지 야채 볶음, 치즈 햄버그스테이크. 여기에 후식이나 간식용 초콜릿과 따뜻한 매실차, 커피를 곁들였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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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신정희(48·서울 대치동)씨는 지난달부터 매일 수능 수험생 딸이 먹을 도시락을 싼다. 학교에서 급식은 멀쩡히 잘 나온다. 다만 닷새 앞으로 다가온 수능 당일(11월 14일) 딸에게 들려 보낼 최적의 도시락을 연습하는 중이다. “선배 수험생 엄마가 ‘수능 한 달 전부터 도시락을 싸주라’고 조언했어요. 아이가 먹어보고 ‘이건 소화가 안 되더라’ ‘이건 졸리더라’ ‘이 반찬이 좋다’ 등을 미리 체크할 수 있도록요.” 수험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르듯, 수험생 엄마들도 ‘모의 도시락’으로 그날을 준비하는 셈이다.
과거 학부모들은 자녀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도시락을 쌌다. 고교 2·3학년이 되면 아이당 하루에 2개씩 싸는 경우도 흔했다. 2003년 초·중·고 급식이 전면 실시되자 대한민국 엄마들은 도시락에서 해방됐다. 21년이 지났으니 도시락 유경험자는 전무(全無)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자녀 인생에서 꽤 중요한 수능 당일엔 급식이 없다는 점. 도시락 싸기가 불안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는 이유다.
‘명문가 요리 선생님’으로 이름을 날리다 ‘오늘의 서울식 집밥’이라는 독특한 레스토랑 ‘수퍼판(Superpan)’을 운영하는 우정욱(62) 대표는 “제1원칙은 수험생 입맛에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반찬은 필요 없어요. 평소 아이가 즐겨 먹는 음식을 싸주면 돼요.” 그가 ‘수능생 도시락 모범 답안’ 2가지를 직접 준비해 줬다. 더 많은 도시락 및 집밥 노하우는 곧 발간될 수퍼판 10주년 요리책에 소개될 예정이다.
그래픽=송윤혜 |
◇볶음밥 반찬 없이 먹을 수 있어 편해
우 대표는 흰밥이나 볶음밥을 추천했다. “흰밥은 어떤 반찬과도 어울리고, 평소 먹던 거라 평상심 유지에 도움이 돼요. 귀리 등 잡곡을 조금 섞어주세요. 볶음밥은 특별한 반찬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데다, 소고기·햄·김치·새우·달걀 등 부재료에 따라 변주가 무궁무진하지요.” 볶을 때는 기름 사용을 최소화한다. 많이 쓰면 느끼해지거나 소화를 방해할 수 있다.
밥 대신 죽도 고려할 만하다. 속이 편하고 소화가 쉬워 장이 예민하거나 중압감이 큰 수험생에게 권한다. 흰죽이 기본이고 육류를 선호한다면 소고기죽이나 닭죽, 해산물류를 좋아한다면 전복·게살·새우죽, 담백한 채소를 선호하면 버섯·시금치·콩나물죽 등이 있다. 계란죽이나 잣죽, 들깨죽, 호박죽, 팥죽도 있다.
죽에는 단점도 있다. 금세 배가 꺼질 수 있다. 또 ‘시험을 죽 쑨다’는 속설 때문에 꺼리는 이들도 있다. 10여 년 전 아들을 대학에 보낸 주부 A씨는 “애가 모의고사만큼 수능 성적이 나오지 않자 ‘엄마가 죽 줘서 죽 쒔다’며 짜증을 내더라고요. 아이가 예민하거나 남 탓 잘하는 성격이면 나중에 맘고생 말고 아예 포기하세요.”
반대 경우도 있다. 20여 년 전 수능을 치른 모 기업 B부장은 “어머니가 든든하게 먹고 철썩 붙으라며 찰밥을 싸줬는데 소화가 되질 않아 3·4교시 내내 졸음과 싸웠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며 웃었다.
우 대표는 “아이가 아무리 좋아해도 김밥은 금물”이라고 했다. “김밥은 먹기 간편하고 든든하면서 다양한 재료로 영양도 풍부하죠. 하지만 꾹꾹 눌러 싸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요. 추운 날씨에는 금세 굳어 딱딱해지기 십상이고요.”
왼쪽 도시락은 달걀 새우 볶음밥과 소고기 뭇국에 반찬으로 치즈달걀말이, 단무지 무침, 스리라차 소시지 야채 볶음, 치즈 햄버그스테이크를 담았다. 오른쪽 도시락은 귀리를 조금 넣은 흰밥, 얼갈이 된장국, 달걀명란찜, 소시지 야채 볶음, 바싹 불고기, 김치 버터 볶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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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 풀어주는 따뜻한 국
희한하게 수능 날이 되면 갑자기 추워진다. 이른바 ‘수능 한파’. 실제로 춥지 않더라도 긴장해선지 춥다고 느끼는 수험생이 많다. 수능 도시락에 따뜻한 국물이 필수인 이유다.
평소 좋아하는 국을 싸가거나, 소화가 잘되는 국을 준비한다. 우 대표는 소고기 뭇국과 된장국을 추천했다. “소고기 뭇국은 호불호가 적고 자주 먹는 국이라 익숙해서 좋아요. 특히 무에는 천연 소화효소인 디아스타아제가 들어 있어요. 된장국도 소화가 잘돼 속이 편하죠. 시금치, 두부 등 수험생 기호에 맞게 싸주면 됩니다.”
미역국도 도시락용으로 제격이다. 영양이 풍부하면서 위에 부담이 적고, 소고기·전복·닭가슴살·바지락·황태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수험생 학부모에게 적극 권하지는 않는다. 죽과 마찬가지로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밥이나 국 뚜껑은 반드시 한 김 빼고 닫는다. 뜨거운 상태에서 뚜껑을 닫으면 도시락통 안에 갇힌 뜨거운 공기가 식으면서 수축해 뚜껑이 안 열리는 수가 있다. 물론 요즘 나오는 도시락통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뚜껑에 개폐 가능한 작은 구멍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평소 먹던 반찬 싸되 단백질 위주로
반찬은 도시락의 그 어떤 요소보다 선택지가 많다. 수험생 입맛에 따라 고기부터 생선, 채소 등 재료는 물론 짜게도 싱겁게도 맵게도 만들 수 있다. 가짓수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우 대표가 싼 도시락을 보면 달걀, 소시지, 소고기 불고기 등 단백질 비율이 반찬 4가지 중 2가지(50%)로 높은 편이다. “단백질은 더부룩하지 않으면서 든든한 포만감이 오래가지요.”
달걀말이는 호불호가 적고 ‘웬만하면 맛있다’는 평을 듣는 반찬이다. 달걀은 영양을 고루 갖춘 완전식품이면서 고기보다 부담이 덜하다. 우 대표처럼 치즈나 명란을 넣을 수도 있지만 기호에 따라 햄·소시지·양파·당근·김 등을 넣거나 케첩·마요네즈 등 소스를 곁들여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우 대표가 싼 도시락 둘 다 소시지 반찬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 ‘소시지는 진리’라고 할 만큼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라 양념만 바꿔서 양쪽 도시락에 모두 넣었어요. 매운 동남아 소스 스리라차로 살짝 새로운 맛을 더해 먹는 재미를 줬고요.<레시피 참조> 도시락에 넣을 불고기는 국물이 흥건하지 않은 바싹 불고기가 어울리고요.”
돈가스, 생선가스, 두부전, 고기 완자 등 부침이나 전류도 인기 단백질 반찬이다. 장조림 역시 소고기·돼지고기 등 육류를 바꾸거나 메추리알을 넣고 만드는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인기 높은 도시락 메뉴다. 다른 고기 반찬과 달리 기름지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
매콤달콤한 오징어채 무침이나 멸치 볶음도 10대들이 선호하는 반찬이지만, 너무 맵거나 자극적이면 속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수험생 도시락 반찬은 자극이 덜하고 담백한 쪽이 낫지만, 매운맛을 선호하는 수험생이라면 자극적인 반찬도 안 될 것 없지요.”
익히는 음식은 완전히 익힌다. 도시락에 담고 식힌 다음 뚜껑을 닫는다. 뜨거울 때 뚜껑을 덮으면 안쪽에 맺힌 이슬이 반찬 맛을 떨어뜨린다. 특히 튀김은 충분히 식혀 담아야 튀김옷이 눅눅해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락통에는 빈 공간이 생기지 않게 꽉 채워 담는다. 운반 중 반찬이 한쪽으로 쏠리면 맛도 모양도 떨어진다. 남는 공간은 오이나 체리토마토 등으로 채운다. 여러 반찬을 한꺼번에 담으면 맛이 섞이고 변질되기 쉬우니 구분해 담자. 절임이나 생선 구이는 상추 등을 이용하면 보기 좋다.
◇초콜릿 등 달달한 디저트 금상첨화
도시락과 별도 용기에 과일을 후식으로 담아주면 깔끔하게 점심을 마무리할 수 있다. 사과나 배를 수험생이 굳이 먹고 싶어한다면 갈변되지 않도록 레몬즙을 바른다. 수분이 너무 많거나 부피가 큰 과일보다 블루베리, 포도, 방울토마토 등 먹기 편한 과일이 낫다. 멜론, 망고 등 큰 과일은 한입에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담는다. 호두, 아몬드, 땅콩 등 견과류는 두뇌 회전을 도우면서 과일과 찰떡궁합이다.
“도시락에 과일도 좋지만 달콤한 디저트류 몇 종류 담는 게 나을 거예요. 후식으로 먹거나 쉬는 시간에 간식으로 알맞아요. 작은 비닐 봉투에 초콜릿, 캐러멜, 젤리, 과자 등을 각각 나눠 담고 지퍼백 하나에 모으면 센스 있는 포장이 됩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이나 매실차를 담아가도 좋다. 시험 날엔 탈이 날 수 있으니 찬물은 피한다. “점심 먹고 커피 마셨다가 오후 시험 볼 때 화장실 참느라 죽을 맛이었다”는 수험생이 많으니 커피는 피하는 편이 낫겠지만, 평소 즐겨 마시는 수험생이라면 한 잔쯤은 컨디션 조절에 도움 될 수도 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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