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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스포츠 인사이드] MLB ‘160㎞ 광속구 시대’… 눈 깜빡하면 공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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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빨라지는 공에 고민 깊어지는 타자

얼마 전 끝난 2024 MLB(미 프로 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와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거포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화끈한 타격 쇼는 없었다. 정규 리그 MLB 전체 홈런 1위(58개·타율 0.322)를 했던 저지는 월드시리즈 5경기 홈런 1개(0.222)에 그쳤다. 전체 2위(54개·0.310)였던 오타니는 2차전에서 어깨를 다친 영향으로 무홈런 2안타(0.105)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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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에인절스 투수 벤 조이스는 올 시즌 속구 구속이 시속 102.1마일(약 164.3km)에 달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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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구’가 뉴노멀인 시대

MLB에선 매 경기 ‘꿈의 구속’이라는 시속 100마일(약 161㎞) 강속구가 흔하게 나온다. 강타자들이라도 좋은 타구를 많이 만들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시즌 투수 62명이 100마일 이상 공을 3319개 던졌다. 전체의 0.47%이며 경기당 평균 1.37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투수 메이슨 밀러(28)는 전체 투구 수 1052개 중 510개가 100마일을 넘겼다. 밀러를 비롯해 11명은 ‘100마일 플러스’ 공을 100개 넘게 뿌렸다.

MLB 투수들 속구(포심 또는 싱커) 평균은 94마일(약 151.3㎞). 20년 전 88.5마일(약 142.4㎞)보다 9㎞가량 빨라졌다. 속구 구속이 100마일 이상이었던 투수는 벤 조이스(LA 에인절스·102.1마일) 등 7명. 100위였던 저스틴 슬레이튼(보스턴 레드삭스)이 96.4마일(약 155㎞)이었다. 한국 프로 야구 투수들 속구 평균은 144㎞가량. 작년 국내 선수로 처음 160㎞를 찍었던 문동주(한화) 평균 구속은 151㎞ 안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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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진경


이런 시속 인플레이션 배경에는 일단 투수들마다 선발·구원 등 역할에 따라 투구 수 관리를 받는다는 점이 깔려 있다. 한계 투구 수에 이르러 교체될 때까지 전력으로 공을 던지다 보니 공이 빨라진다. 진화한 훈련 방법도 영향을 미쳤다. 투수들은 이제 고속 카메라와 모션 캡처 시스템 등 스포츠 과학을 활용해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투구 동작을 찾는다. 맞춤형 식단, 근력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신체 능력도 끌어올린다. 오타니(193cm)만 해도 고교 시절 몸무게 65kg으로 마른 체형이었는데, 꾸준한 ‘신체 개조’를 통해 100kg 넘는 근육질 몸을 만들었다. 의술이 발달해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거쳐 구속이 늘어나는 사례도 흔해졌다.

◇눈 깜빡하면 공은 지나간다

마운드 투구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 투수들은 발을 내디디면서 몸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실제 손에서 공이 떠나는 위치는 대략 16.75m 정도로 더 짧다. 이런 100마일짜리 공은 포수 글러브에 꽂힐 때까지 0.375초 안팎 걸린다고 한다. 숙련된 MLB 타자는 날아오는 물체(공)를 ‘인지’하는 데 약 0.1초, 방망이를 휘두르는 데 0.15초쯤 필요하다. 스윙을 할지 말지 결정할 시간은 0.125초 남짓이란 얘기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는 데 0.3초 안팎이 걸리므로 타격을 할 땐 일단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타자로선 평소 상대 투수 폼과 구질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훈련을 거듭한 뒤 순간 판단으로 휘둘러야 한다. 빠른 공을 노리던 타자가 상대적으로 느린 공이나 휘는 변화구가 들어오면 타이밍을 놓쳐 헛스윙하기 일쑤다. 움직이는 물체가 어느 위치에 올지 예상하는 ‘동체 시력’이 좋을수록 유리하다.

◇'투고타저’ 시대 공을 띄워야 산다

올해 MLB 정규 리그 평균 타율은 2022년과 같은 0.243. 1968년 0.237 이후 가장 낮았다. 2000년 평균 0.270과 비교하면 타력 저하가 두드러진다. MLB 사무국은 타격이 저조하면 경기 재미가 떨어진다 보고 2022 시즌 이후 수비 시프트(타자들 타구 방향 데이터를 활용,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전술)를 금지했다. 베이스 크기도 늘렸다. 타자들에게 유리한 조치였지만 타율을 높이진 못했다. 투수들도 직구처럼 날아오다 변화하는 여러 구질을 계속 개발해 타자들 눈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타격 트렌드 변화도 관계가 있다. 야구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스탯캐스트란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면서 타구 속도가 157km 이상, 발사각이 25~30도일 때 장타를 얻기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뜬공을 노리는, ‘플라이 볼 혁명’이 일어났다. 단타 3개를 쳐 1점을 내는 것보다 2루타 2개로 1점을 내는 게 생산성이 높다는 내용이다. 더구나 땅볼을 치면 내야 수비진 시프트에 걸릴 위험이 높다. 이후 타자들은 힘을 키우고, 타격 폼을 수정했다. 공을 강하게 치려면 스윙이 커야 한다. 삼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삼진과 뜬공 아웃이 많아지더라도 장타의 ‘가성비’ 때문에 타자들은 계속 공을 띄우려고 한다. 전에는 레벨 스윙(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스윙)과 다운 스윙(궤적이 약간 아래로 향하는 스윙)이 대세였는데 이젠 올려치기 타법인 어퍼 스윙이 흔해졌다.

이순철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타자가 떨어지는 공이나 좌우로 휘는 공에 대응하기 위해 발사각을 만들어내는 어퍼스윙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MLB에서 뛰었던 김선우 MBC 플러스 해설위원은 “투수들은 스플리터, 서클 체인지업 등 떨어지는 구종이나 좌우로 크게 휘는 스위퍼 등 새로운 구종을 발전시켜 나간다”고 말했다. 투수가 새 무기를 내놓으면, 타자들은 대처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쫓는 셈이다.

[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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