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대안으로 야권에서 먼저 주장
헌재보단 국민투표가 더 유리?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윤석열 대통령이 5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2024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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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로 인해 정국이 요동치고 있는 요즘, 2016년이 부쩍 자주 소환되고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권이 위기를 맞았던 당시와 지금 상황이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대통령 권력 주변에 있던 비선의 등장과 대통령 지지율 추락에 더해 야권에서 조기 대선을 주장하는 상황까지 기시감을 느낀다는 주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8년 전과 다른 게 있다면 바로 '임기 단축 개헌'입니다. 2016년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 초기부터 탄핵 일변도로 밀고 갔지만, 이번엔 개헌과 탄핵을 동시에 꺼냈습니다. 특히 8년 전에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막기 위해 먼저 꺼내든 개헌이 이젠 야당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임기 단축 개헌 실현 시, 빠르면 내년 3월 조기 대선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직후 열린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 논의를 제안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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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권에서 주장하는 임기 단축 개헌은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보장한 헌법을 개정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를 3년 또는 4년으로 단축시키자는 게 골자입니다. 이 구상대로라면 빠르면 내년 3월 늦으면 내후년 3월에 조기 대선이 열립니다. 개헌은 탄핵과 마찬가지로 2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이후 절차는 판이합니다. 탄핵은 헌법재판소에 최종 판단을 맡기지만,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칩니다. 윤 대통령을 향한 여론은 악화하고 있지만, 헌재의 보수적 성향을 우려한 야권에서는 헌재의 판단에 맡기기보다, 국민들에게 윤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묻는 것이 더 유리하다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현실화된다면 37년 만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됩니다.
임기 단축 개헌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발상입니다. 개헌 자체도 87년 체제에 멈춰선 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임기를 줄이는 개헌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다만 지난 4월 총선 이후 국회에 입성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언급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 부부가 개입된 소위 '명태균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시민사회계부터 움직였습니다. 지난달 31일 진보 원로들이 '전국비상시국회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임기를 2년 단축하는 개헌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야권의 강성 의원들이 이어받았습니다. 김용민·박홍근·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운하 혁신당 의원 등 현역 20여명이 참여하는 '대통령 파면 국민투표 개헌연대(개헌연대)'가 8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아직 민주당은 "개별 의원 의견으로 보면 좋겠다(한민수 민주당 대변인)"며 거리를 두고 있지만, 국회에서 처음으로 임기 단축 개헌이 공식화한 것입니다.
탄핵 불가능하니 꺼낸 대안?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난 2017년 3월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참가 시민들이 촛불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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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단축 개헌을 주장하는 측은 개헌이 탄핵보다 더 우수한 절차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개헌연대는 신속성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탄핵사유에 대해 지루한 법리논쟁 자체가 불필요하다"며 "정치적 타협이 이뤄진다면 탄핵절차보다 더 빠르게 추진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직접민주주의 실현 측면을 부각하기도 합니다. 전국비상시국회의 소속 이부영 전 의원은 지난 5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소수의 헌법재판관들이 정하는 탄핵보다 임기 단축 개헌이 국민들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임기 단축 개헌은 탄핵을 못 하기 때문에 꺼낸 '대안 차원'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입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재로선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헌재를 통과하기도 어렵다"며 "탄핵보다는 부담이 적어 여당을 설득하기도 쉽고, 정치적 공세도 가능하니 개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당으로선 지난 탄핵으로 정권을 내준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에, 국회 통과선인 200석도 확보하기 힘들 것이란 비관적 전망입니다. 설사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헌재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개헌연대 역시 "탄핵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보수화된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현재 6인 체제가 된 헌재에선 4명의 재판관이 윤 대통령 재임 기간 임명됐습니다. 국민 여론이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탄핵을 추진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 "개헌으로 우회하는 것(민주당 출신 정치권 인사)"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정미(가운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2017년 3월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읽고 있다. 왕태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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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야당은 탄핵 불씨를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윤석열 탄핵 준비 의원연대(탄핵연대)'도 오는 13일 국회에서 공식 발족할 예정입니다. 민주당 등 진보 성향 5개 정당 소속 의원들이 참여하기로 하면서 현재까지 30여 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헌연대(20여 명)보다 더 큰 규모입니다. 특히 혁신당은 조국 대표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원들이 탄핵연대에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야권 내부에서도 임기 단축 개헌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제기됩니다. 개헌이 오히려 탄핵보다 현실성이 떨어질뿐더러, 방식 역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8년 전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의 한 인사는 "개헌이 탄핵보다 더 힘들다"라며 "국민투표는 비용과 절차도 복잡하고, 국민들도 분열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도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이 있다고 특정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는 방식도 적절하지 않고 잘못된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개헌 주장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일부 존재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사법 리스크에 탄핵과 개헌으로 맞불을 놓고 이 대표의 대선에 꽃길을 깔아주겠다는 심산이 엿보인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가 이달 연달아 나오는 만큼 사법리스크에 대한 시선을 분산하려는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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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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