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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외교비사⑯] 어느 남북 외교관의 대화…"우리 사돈 맺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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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카이로, 현지 외교관 월례 오찬
南 김재용 영사-北 배영낙 참사 간 만남
얼어붙은 분위기, 대화 오가며 점차 해빙


더팩트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74년 10월 2일 남북 관계가 적대적이었던 당시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남북 외교관의 대화를 소개한다. 두 외교관은 초반만 하더라도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우리 사돈 맺읍시다"라는 농담 섞인 말이 나왔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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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정부의 공식 문서에 북한을 '북괴'로 적시했을 정도로 남북 관계가 적대적이었던 1974년 10월 2일. 주카이로 총영사관의 김재용 경제담당 영사는 현지 오찬에서 북한의 배영낙 참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남북 외교관은 초반만 하더라도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며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대화가 오가면서 이들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

두 외교관은 남북의 통상 환경부터 종교 문제와 '수령'이라는 표현의 적절성까지 다채로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심지어 남북 간 거래를 현지에서 트자는 제안도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던 이들은 월급과 자녀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오찬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우리 사돈 맺읍시다"라는 농담 섞인 말까지 나왔다.

<오찬 전 대화 내용>

배 참사 : 인사를 영어로 하기에 일본 대사관에서 온 줄로 알았어요.

김 영사 : 대한민국 공관의 통상담당이야요. 영어는 국제 통용어가 아닙니까.

배 참사 : 통상담당이라면 김철인가요?

김 영사 : 김철 씨는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카이로 소장이야요. 저는 말한 바와 같이 공관의 경제 담당이야요.

배 참사 : 김철 씨가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근래에 한번 김철이를 찾아가 "좀 덜 설치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던 참인데, 어떻게 된 셈인지 우리하고 친하던 애굽(이집트)의 거래처 이사들이 김철이를 만나고 오면 다들 우리를 멀리하고 싹싹 돌아서며... 듣자니 정치적으로 논다고 하는데 공관의 감독을 받고 있을 테니 좀 지령해 너무 설치지 말고 힘들지 않게 해주시오.

김 영사 : 김철 씨는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카이로 사무소장이며 코트라는 비영리 기관이외다. 주로 거래 알선, 아국 상품의 선전, 시장조사를 하고 있지 정치 활동이나 남을 헐뜯지 않고 수출 진흥 활동만 하고 있어요. 남을 헐뜯어서 내 물건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닌데 당신네들을 헐뜯겠소? 장사라는 건 내 물건의 품질이 좋고 값이 싸면 경쟁에 이겨 자연히 팔리는 것이지 남을 헐뜯는다고 팔리지는 않지요. '지령하라'는 말을 했는데 지령이라는 말은 비밀공작 하는데 쓰지 지령은 무슨 지령이요? 지령이란 말은 북한에서는 많이 쓰이나 우리 사회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아요. 북한이 애굽에 수출하는 품목이 우리 것과 경쟁이나 대립 관계에 있지도 않는데 왜 그러세요. 외교관은 직선적인 말을 좀처럼 하지 않지 않아요?

배 참사 : 무슨 사절단이 온다는데 무슨 사절단인지요?

김 영사 : 사절단 오는 것 없어요. 별로 알고 있는 게 없는데.

배 참사 : 사절단이 온다고 하는데...

김 영사 : 서울에서 사업차 이곳에 오는 업계 인사는 있어요.

배 참사 : 참, 저... 명년에 카이로 박람회 참가 합니까?

김 영사 : 북쪽에선 이미 500평방미터 장소를 예약하였다는데 무슨 물건을 출품합니까? 기계류 같은 것인가요?

배 참사 : 우리 물건이 기계류 위주다 보니 카이로 박람회 출품 품목을 돌려가며 박람회에 출품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방법이며 간혹 박람회가 끝난 후 현지에서 팔기도 하지요. 서울에선 어떻게 하고 있어요?

김 영사 : 매년 수십 개의 박람회 또는 상품 전시회에 참가하지요. 출품 상품은 개최지의 시장에 적합한 품목을 선정해 개개 박람회마다 상품을 보내고 있어요. 애굽하고 장사는 잘됩니까?

배 참사 : 아시다시피 협정에 따라 애굽과 수출입을 하고 있는데, 통상의정서에서 상호 규정한 교역액을 우리는 전액 수출할 수 있으나 애굽 측에서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어요. 작년에도 의정서 서명차 애굽 대표단이 평양에 가기로 돼 있었으나 가지 못했고 금년에는 우리가 카이로에 오기로 돼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나라의 수입이 주로 국영수출입회사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들 회사는 우리의 국영무역사와 성격이 달라 교역에 좀 난점이 있어요. 카이로하고 어떻게 장사를 하고 있지요?

김 영사 : 우리야 현금 거래이며 개인, 국영수출입회사의 입찰 참가 등을 통해 수출해요.

배 참사 : 금년에는 애굽에 무슨 물건을 수출했어요?

김 영사 : 큰 품목으로는 타이어, 합판, 어망 등이 있어요.

배 참사 : 애굽 쪽에는 우리에게 타이어를 사라고 하는데 서울에서 대량 수입하는군요. 서울 타이어는 자기네가 쓰고 애굽 타이어를 우리에게 팔고자 하는 모양이구만...

김 영사 : 평양에서 카이로까지 수출하려면 선박 관계가 용의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죠?

배 참사 : 선박 문제가 큰 문제야요. 우리 자체의 상설단이 없다 보니 애로가 많으며 작년에 김일성 수령님께서 자체의 상선단을 창설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려 2만톤급 선박으로 구성된 상선단을 가지려고 해요. 이와 같은 상선단은 구라파(유럽)에 대한 우리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어 절대로 요구되죠.

김 영사 : 조선공업이라면 아시다시피 우리가 단연 앞서 있으며 우리의 시설은 선진 조선국의 시설보다도 더 최신시설을 보유하고 있어요. 이미 알고 있을 줄로 믿어요. 100만톤 선박 건조 능력의 독(Dock·선박건조시설)을 건조하고 있고 수개월 전에는 30만톤급 유조선을 진수시켰죠. 교역이 가능하다면 우리한테서 선박을 건조해 값도 싸고 빠른 시일 내에 건조가 가능하죠.

배 참사 : 우리 이곳 카이로에서 당장 장사를 해볼까요?

김 영사 : 장사하는 것이야 좋겠으나 실제로 현재의 여건하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겠어요? 남북대화에서 이산가족 교류하고 문화·무역 교류, 정치 이야기를 하자고 우리가 제의했는데 평양에서 반대하니 장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말로는 누구나 달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죠. 남북한이 교역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북한의 연간 총수출액은 얼마나 됩니까?

배 참사 : 잘 모르겠어요. 우리의 산업이 서울처럼 수출에 역점을 둔 사업이 아니라 국내 자립경제를 위주로 하고 있어요. 신문 보도 및 여러 가지 간행물에서 서울의 활발한 수출상이 보도되고 있더군요.

김 영사 : 우리가 발전해 부자가 되면 통일 후에도 좋지 않겠어요?

배 참사 : 근래 동구권에도 초청장(개천절 리셉션)을 적극 보내고 있더군요.

김 영사 : 뭐 동구권이야 우리가 초청장을 못 보낼 이유라도 있나요? 이 지구에서 생존을 같이하는 사람으로서 친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미국, 소련, 중공도 가까이 지내고 있지 않아요? 악인이 있나요?

배 참사 : 종교인을 탄압하는 사람들은 악인이죠.

김 영사 : 대부분의 종교는 이북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특히 기독교 같은 것은 내가 알기엔 이북이 중심지인 줄 알고 있는데.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들은 당신네가 씨조차 없도록 탄압 근절했기 때문에 당신네들에게 탄압할 종교가 없는 것으로 알아요. 언제부터 종교를 두둔하기 시작했죠?

남북 외교관의 대화는 '지령'이라는 표현으로 잠시 냉랭해졌지만 점차 대화가 오가며 분위기가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배 참사가 남북 거래를 제안하고, 김 영사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통일'을 언급한 점은 눈에 띈다. 배 참사가 한국의 수출 중심 경제에 부러움을 드러내고, 거론해 봤자 불리할 수밖에 없는 '종교 탄압'을 선뜻 이야기한 점도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들의 대화는 오찬장에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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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사는 배 참사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우리 외교관과 대화를 기피하는 북한 외교관들과 달리 감시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며 "발언의 자유가 크게 부여된 기물 외교관으로 보였다"고 평가했다.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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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 테이블에서의 대화>

배 참사 :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죠? 오기 전엔 어데 있었습니까.

김 영사 : 2년 가까워집니다. 전에는 싱가폴(싱가포르)에 있었어요. 북한 외교관이 영어 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는데 영어를 잘하는군요. 어데서 배웠어요? 해외에서 많이 근무한 것 같군요.

배 참사 : 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과를 나왔고 대외통상성 소속이며 남미, 버마(미얀마) 등에서 근무했어요. 경제관계 사절단과 함께 구주(유럽) 등 동남아 여러 곳에서 여행을 많이 했죠. 호주, 인니(인도네시아), 싱가폴 등에도 가봤어요. 싱가폴에 계셨다고 하는데 67년에 처음 싱가폴에 파견한 통상 사절단과 함께 싱가폴에 갔으며, 통상대표부 설치 협정을 교섭했죠. 우리는 틀림없는 일은 하지 않아요.

김 영사 : 싱가폴하고도 인연이 깊군요. 싱가폴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평양에서 일정한 금액의 물건을 산다고 싱가폴에 약속했음에도 통상대표부를 설치한 뒤 약속한 액수의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당신네와 교섭한 당시 싱가폴 관리가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지금 싱가폴하고 교역이 잘 되고 있어요?

배 참사 : 싱가폴에 계셨으면 김영덕이를 잘 알겠군요. 이 사람을 통해 싱가폴에서 고무와 신발류를 수입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한테서 많이 남겨 먹었어요. 우리가 장사를 할 줄 알았어야죠. 김영덕은 이제 부자가 됐죠. 여러 번 김영덕 집에 가서 저녁을 같이했으며 얼마 전 소식에 의하면 근래 구라파 여행 후 이곳에 한 번 들른다고 했는데 아직 들리지 않아요.

김 영사 : 김영덕이를 알고 말고요. 평양하고 생사를 같이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 배경이 좋지 못하죠. 왜정 때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감시병을 했고 부인은 기생 출신의 일본 여자죠. 한때 그 사람은 싱가폴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으나 지금은 교포 사회에서 격리됐을 뿐 아니라 싱가폴 정부 측에서도 별로 환영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 사람 사기꾼이죠. 저... 여기 온 지가 약 3개월 됐다고 했는데, 혹시 4월이나 5월에 대외무역상이 태국을 방문했을 때 카이로 주재 북한 대사관 상무관이 방콕까지 가서 동행했다고 들었어요. 바로 배 참사였군요.

배 참사 : 정보가 빠르군요. 어데서 알았어요. 그때 인니에도 다녀왔죠.

김 영사 : 세상에 비밀이 뭐 있나요. 활동의 폭이 넓으신 것 같은데. 태국에서 성과가 있었어요?

배 참사 : 뭐 별로...

김 영사 :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느끼는데 (북한) 직원의 큰 아이들을 볼 수가 없는데 평양으로 보냅니까?

배 참사 : 일곱살 이상 아이들은 조국으로 보내면 해외직원 자녀를 위한 교육 기관에서 모든 것을 돌봐주죠. 기숙사가 있으며 잘 돌봐줍니다. 조국에 있는 할머니들이 이들을 떼 놓고 가라고 하지만 버릇이 나빠지지 않겠어요. 아이들을 찾아가서 보면 살이 쪄 있어요.

김 영사 : 학교는 평양에 있나요?

배 참사 : 평양은 복잡하기 때문에 지방에 있어요. (남한은) 외국에 나올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하죠? 다들 데리고 나오나요?

김 영사 : 다들 데리고 나와요. 정부에서 여비를 비롯해 자녀 수당을 지급하죠. 교육은 현지 학교에서 시킵니다.

배 참사 : 아이들에겐 조국 교육을 시켜야죠.

김 영사 : 일정한 나이에 달한 아이들을 본국에서 기숙시키며 교육을 시키는 것, 좋다고 생각돼요. 장점이 있죠. 반면 단점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어린아이들은 부모한테서 뗄 때 부모는 평안할지 모르나 부자 간의 애정을 애들이 모르고 자라게 될 것 아니겠어요. 아이들을 부모가 직접 데리고 키우지 않으면 결국 남이 되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에 대한 존경 등 같은 것이 전혀 없게 될 것이고 이런 면에서 단점이 있다고 봐요. 사람에겐 감정이라든가 애정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배 참사 : 모르는 말이외다. 교육은 조국의 교육이 절대적이며 당신네들은 개인 위주로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아요.

김 영사 : 잘 모르긴 하겠으나 국가가 앞서느냐, 개인이 앞서느냐 하는 문제가 초점인 것 같은데 자기의 생활 철학, 사회, 생활 양식이 절대적으로 남의 것보다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겠으나 이를 남에게 강요할 수 없죠. 세상에는 여러 가지 생활 철학, 제도가 있는데 각자 다 자기네 것이 좋다고 자부하면서 살고 있지 않나요. 이를 서로 상호 존중해주는 게 중요하고 상호 존중할줄 아는 사람이 문명 된 사람이 아닐까요. 너무 자기주장만 하면 손가락질받아요.

배 참사 : (혼잣말) 외교관이 다르구만...

김 영사 : 이북에선 지금도 쌀 배급하나요?

배 참사 : 배급은 아니고 싸게 분배해요.

김 영사 : 카이로 아타바 시장에서 보면 많은 (북한) 직원 부인들이 같이 언제나 마이크로버스를 가지고 와서 시장을 보고 있는데 공동구매를 하는 건가요?

배 참사 : 공동구매하지 않아요. 웬만한 것은 동네 시장에서 구입하고 고기, 생선같이 동네 시장에서 구입할 수 없는 것을 큰 시장에서 사고 있죠. 당신네들도 큰 시장을 이용하고 있지 않아요? 카이로에는 항상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가는 분들이 많이 방문하며 이분들이 카이로에 오면 음식에 대해 불평이 대단해 한식 접대를 분주히 해야 합니다. 이들 손님 접대 때문에 시장을 늘 여유 있게 봐둬야 해요. 어떻게 닭고기 먹고 싶은 사람, 소고기나 생선 먹고 싶은 사람 식성이 각자 다른 데 공동구매를 합니까.

김 영사 : 해외 나와 있는 직원의 봉급은 외국 돈으로 받나요?

배 참사 : 계급에 따라 봉급액은 정해져 있으나 모든 지출은 대사관에 경리부가 있고 이곳에서 일체 책임지고 처리하죠. 모든 것은 국가에서 지불해줘요.

김 영사 : 우리의 경우엔 계급에 따라 외화로 봉급 받아요. 예를 들면 참사관 1200불, 서기관 얼마 하는 식으로... 모든 것을 국가에서 지불해준다면 상점에 가서 일상용품을 산다든가 살림을 하다보면 이것저것 돈 드는 것이 있지 않겠어요. 봉급의 일부를 현금으로 지급받고 용도가 클 경우 국가가 지불해준다는 건가요?

배 참사 : 국가에서 일체를 돌봐주며 차도 대사관에서 구입해주고 각자가 사지 않아요. 우리는 참사관을 참사라고 하는데 '관'을 좋아하는군요.

김 영사 : 만족스럽겠어요. 우리가 관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참사관이란 말을 여러 나라에서 쓰고 있어요. 이북에 김일성 수령님이라고 쓰는데, 수령이란 말은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만주의 마적단 우두머리를 두목 또는 수령이라고 부를 때 쓰던 수령과 같은 어감이 들어요. 왜 대통령 또는 수상 등 평범한 용어를 쓰지 않아요?

배 참사 : 우리는 호화스럽게 살려고 하지 않아요. 세금도 이북엔 없어요.

김 영사 : 인간의 만족은 각자가 설정하는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세금 없는 나라라곤 석유가 많이 나는 사우디(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로만 알고 있는데 정말이야요? 세금 없이 국가는 어떻게 살림합니까. 석유 같은 자원도 이북에 없지 않어요.

배 참사 : 하도 세금 금액이 적기 때문에 세금이 없는 거나 다름없어요.

김 영사 : 좀처럼 대사관에서 일하는 현지 고용원을 보지 못하는데 일체 쓰지 않나요?

배 참사 : 거의 모든 일을 우리가 직접 하죠. 운전도 우리가 하고 아침엔 청소도 각자가 하죠. 또 체조도 합니다.

김 영사 : 체조를 한다니 생각이 나는데 어렸을 때 국민학교에서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기 전 조회에서 라디오에 맞춰 체조하던 생각이 나는군요. 대사관에는 직원이 수십 명 되니까 일제히 체조하는 것도 좋겠어요. 우린 골프나 정구 같은 것으로 건강 유지를 합니다.

배 참사 : 아이들 있어요?

김 영사 : 전 아들이 셋 있어요.

배 참사 : 딸 둘과 아들 하나 있는데 우리 사돈 맺읍시다.

김 영사 : 농이시겠지. 사돈 맺을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우리 매월 정례 오찬에서 만나게 될 텐데 너무 직접적이고 직선적인 자기주장을 피하고 경제 통상 면에서의 서로의 애로 등을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 달에 또 만납시다.

김 영사가 바라본 배 참사의 모습은 일반적인 북한 외교관과는 달랐다. 김 영사는 배 참사에 대한 보고서에 "영어 구사력은 의사 표현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능숙하며 영어를 자연스러운 제스처와 함께 사용한다"며 "많은 해외 여행을 했고 서방 외교관과도 대화를 자연스럽게 교환하며 통상 분야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데다 세련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른 북한 외교관들이 우리 외교관과 대화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배 참사는 통상 분야를 비롯해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전개한다"며 "오찬에 같이 참석한 동료(감시)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북한의 뒤떨어진 수출상을 인정하면서 자신 있는 태도를 견지해 자유가 크게 부여된 외교관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영사는 "대화 중 북한의 상선단 창설과 우리 측으로부터 선박 도입 문제에 대해 이곳에서 추진해 보자는 내용은 매우 시사적인 면이 있었다"며 "검토의 여지가 전혀 없지도 않아 보였다"고 맺었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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