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5 (금)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인체를 변형시키는 기후위기…신간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후변화가 뇌, 감정, 행동에 미치는 영향 집중 조명

연합뉴스

가뭄으로 말라붙은 불가리아의 댐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기후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를 환경 문제, 즉 인간과 구분된 외부 세계의 변화로만 인식하기 쉽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름 기온이 더 올라가면 에어컨을 세게 틀면 된다'는 안이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후 변화가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풍경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 행동, 인식, 결정에 실시간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과학자이며 환경 저널리스트인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은 최근 번역 출간된 저서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추수밭)에서 기후변화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인체 내부에서 인류를 직접 타격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이런 관점을 일찌감치 제시한 기관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미국 국방부였다. 펜타곤은 2015년 7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기온이나 해수면 상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국방부는 기후 변화는 빈곤, 사회 갈등, 무능한 지도자, 취약한 정치 제도 등 기존 문제를 악화시키고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이런 견해는 신경과학자의 연구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들은 다른 요인이 일정하다면 주변 온도가 섭씨 2도 상승하는 경우 폭력 범죄 발생률이 3% 이상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는 기온 변화가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 세로토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폭염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기후 변화는 인간의 작업 능력이나 인지력도 악화시킨다. 책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고 폭염이 잦아지면 문제해결 능력, 인지 능력,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대기오염은 과일을 포장하는 작업자와 콜센터 상담원을 가리지 않고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온이 오르면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에어컨 없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에어컨이 갖춰진 기숙사의 학생들보다 인지능력 테스트에서 13% 낮은 반응 속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인간의 뇌 조직이 열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책은 설명한다. 기온이 높아지면 뇌세포는 포도당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섭씨 39도 이상이면 뇌 조직 구조에 변형이 생긴다. 인체의 신경계와 순환계는 뇌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이 과정에서 인지 능력이 희생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책 표지 이미지
[추수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새로운 질병도 대두한다.

2009년 여름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호수에서 수영을 즐긴 뒤 여드레 만에 뇌사 상태에 빠졌고 결국 생을 마감한 필립 곰프라는 열 살 소년의 사례가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새로운 위험을 보여준다. 곰프의 사인은 속칭 '뇌를 먹는 아메바'인 네글레리아 파울러리(N. 파울러리)라는 생물에 의한 아메바성 수막염이었다.

N. 파울러리에 감염되면 생존하기 어렵다. 다만 그 사례는 매우 드문 것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기후 변화로 인해 그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N 파울러리는 섭씨 27도는 되어야 생존이 가능하며 섭씨 46도까지는 거침없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허리케인 위성사진
[NOAA/AP=연합뉴스 자료사진]


기후 재해의 충격은 태아에게도 전해진다. 노무라 요코 미국 뉴욕시립대(CUNY) 퀸스칼리지 교수는 2012년 10월 말 뉴욕과 뉴저지 일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열대성 사이클론) '샌디'의 영향을 분석했다. 태아 시절 자궁 내에서 샌디를 경험한 여아는 그렇지 않은 여아보다 우울증 가능성이 30배 높았다. 남아의 경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가능성이 60배 높았다.

기후 변화가 동물의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만 학자 홍영옌이 이끈 연구팀의 모의실험에서는 해양 산성화로 인해 물고기가 청각으로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앞선 연구에서는 바닷물의 산성도가 높아지면 물고기의 후각 신호 반응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지구가 더워지면 에어컨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탄소 배출에 관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50년 이내에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사하라 사막 중 가장 뜨거운 지역만큼 무더운 환경에서 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컨 사용을 늘리면 결국 발전소를 늘려야 한다. 현재의 전력원 구성을 고려하면 이는 화석 연료 사용을 증가시키는 일이다.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산불
[Getty Images·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은 기후 변화의 충격이 인체 곳곳으로 이미 파고들고 있다고 역설한다.

"환경과 정신의 관계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얽혀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 밖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 (중략) 기후 재난이 우리의 뇌, 감정, 행동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결코 기후변화를 미래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김재경 옮김. 384쪽.

sewonle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