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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관계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고 폐지 입장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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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갖고 왔으면 그의 임기 내에 시작했어야 했다. 새로운 분류과세 체계를 만드는 것은 조세 저항이 셀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치 철학이 다르거나 조세를 보는 관점이 다른 세력이 집권하면 쉽게 물러설 수 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정치적 책임 문제에서 볼 때 다음 정부에서 시행하기 힘든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게 이번 사태가 역사에 남긴 교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힌 4일,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에게 이번 결정의 의의를 물었더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다수의 방송·언론 인터뷰에서 왜 금투세를 도입해야 하는지 설파했던 인물이다. 투자자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그들 우려를 최대한 불식시킬 수 있는 수정안을 시행하자고도 주장했다.
금투세를 둘러싼 4년여의 줄다리기가 시행을 두 달 앞두고 허무하게 끝났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세입 기반 확충', '소득 재분배 강화'를 목적으로 주식, 채권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한 수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투세 도입을 추진했다. 그해 세법을 개정했고 지난해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투세 폐지'를 공약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시행시기가 2년 유예됐고, 야당마저 이에 동조하면서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학자들은 금투세와 같은 자본소득 과세를 '복지국가로 가는 첫 발걸음'에 비유한다.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자산이 지나치게 빠르게 불어나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을 억제하고, 자본소득 과세를 재원으로 삼아 사회적 약자와 중산층 복지를 폭넓게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만을 제외한 주요국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다.
예정대로 금투세가 내년 도입됐다면, 우리는 그 재원을 어떤 복지정책에 활용할 수 있었을까. △노인일자리 △기초연금 중 하나의 예산 증액분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금투세 시행으로 2025~2027년 세수가 연평균 1조3,000억 원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한 국회예산정책처 자료, 참여연대 '2025년도 보건복지 예산안 분석'을 참고했다. 심지어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했던 증권거래세율 인하는 계속 시행하면서 복지에 쓸 수 있는 재원은 계속 줄어들 예정이다.
금투세입은 전체 세입 기준으로는 0.3%의 푼돈일지 몰라도, 일할 사람은 주는데 돈 쓸 곳은 많은 저출생·고령화 사회에서 세수 구멍을 메우는 작은 조각은 됐을 것이다. "자산 격차가 계층 이동의 장벽"1이라는 청년을 위한 소득 재분배의 단초가 됐을지도 모른다. 정치권의 결정을 '민생보다 표심',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교수는 통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조세는 납세자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거부하면 정치적으로 상당기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현재 역사 단계에서는 안 되는 세금이었구나 싶다. 이건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한 나의 마음이다."
구조개혁이 김건희 여사 뒤로 밀려날수록 재원은 모자랄 수밖에 없고 금투세는 언젠가 다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의 누군가는 이 같은 역사적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를 했어야 했다. 그렇게 금투세 폐지에 동의해서는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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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산 격차가 계층 이동의 장벽"
2021년 서울연구원 조사에서 불평등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분야는 자산(33%)이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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