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영양실조인 생후 12~18개월 아이에게 기존 치료용 이유식의 주재료인 쌀, 렌틸콩, 분유(합계 50.9%) 대신 병아리콩(사진), 땅콩, 대두, 바나나(합계 47%)로 바꾼 ‘미생물군 대상 보완식품’(MDCF-2) 이유식이 건강 회복에 훨씬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로리와 영양 조성은 비슷하지만 장내미생물 관여도가 달라 실제 흡수율에서 큰 차이를 보인 결과다. 위키피디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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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예상과 달리 지난주 미국 대선이 싱겁게 끝났다.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법’과 ‘밥’ 사이의 선택”이라는 한 평론가의 촌평이 기억에 남는다. 지표로는 미국 경제가 잘나가는 것 같지만 서민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인 고물가에 시달려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결과라는 것이다.
지구촌의 저소득 국가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기후변화로 흉년이 잦아지는데다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가 침략당하면서 글자 그대로 먹고살기가 더 어려워졌다. 특히 아이들의 상황이 심각해 5살 미만 아동 1억5천만명이 영양부족으로 발육이 제대로 안 되고 이 가운데 5천만명은 영양실조 상태다. 5살 미만 아동 사망의 절반 가까이인 연간 310만명이 영양실조와 관련이 있다.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는 이런 비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임상시험 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워싱턴대가 주축이 된 미국과 방글라데시 공동연구자들은 심각한 급성 영양실조 상태인 12~18개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기존의 치료용 이유식에서 몇가지 성분을 바꾼 ‘미생물군 대상 보완식품’(MDCF-2·보완식품) 이유식이 체중 증가 등 회복 효과가 훨씬 뛰어남을 확인했다.
미생물군이란 장내미생물 전체를 뜻하는데, 영양실조 아동은 건강한 아동에 비해 장내미생물이 빈약하고 구성이 다르다. 그 결과 쌀, 렌틸콩, 분유가 주성분인 치료용 이유식을 먹어도 장에서 제대로 흡수가 안 돼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방글라데시의 이유식에 즐겨 쓰는 식재료인 병아리콩과 땅콩, 대두, 바나나로 주성분을 바꿨고, 이는 기존 치료용 이유식보다 칼로리 밀도가 15% 낮음에도 체중 증가 등 치료 효과가 뛰어났다.
분석 결과 이 보완식품을 먹은 아이의 미생물군이 건강한 아이와 가깝게 변했다. 연구자들은 연초 학술지 ‘네이처’와 ‘네이처 미생물학’에 잇달아 발표한 논문에서 보완식품엔 글리칸 성분이 풍부하며 ‘프레보텔라 코프리’라는 장내미생물이 이를 분해한 산물을 장이 흡수하면서 그리 됐다는 점을 밝혔다. 음식의 영양소 구성과 칼로리가 같아도 어떤 식재료로 만드느냐에 따라 장내미생물의 생태계가 달라져 영양 흡수율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번 결과는 영양실조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에서 장내미생물의 도움으로 체내 흡수율이 높은 작물 위주로 재배하면 식량 증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내미생물의 힘이 저소득 국가의 어린이에게만 미치는 건 아니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핀란드 연구자들은 ‘똥우유’이라는 다소 비위가 상하는 처방을 소개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은 소화기 염증이나 천식 같은 면역기능 이상이 생길 위험성이 큰데, 이는 일반 분만 과정과는 달리 엄마의 장내미생물에 노출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엄마의 대변 3.5㎎을 탄 우유를 먹이자 그냥 우유만 먹은 대조군 아이들과 장내미생물 조성이 차이가 났고 일반 분만으로 태어난 아이와 비슷해졌다. 현재 추적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이들의 면역계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는지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맨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장내미생물의 힘이 우리 몸의 건강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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