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낮 서울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돈암수정캠퍼스에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을 반대하는 의미의 학교 점퍼가 놓여 있다. 고나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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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본관 앞, 학생들이 벗어둔 학교 점퍼 수백점이 놓였다. 수업 거부를 선언한 학생들은 ‘공학 전환 철회’ 손팻말을 들고 결연한 표정으로 섰다. 대학 쪽의 ‘남녀공학 전환’ 움직임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전날 학교 본관을 점거한 데 이어,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수업 거부와 시위에 나선 것이다.
동덕여대의 남녀 공학 전환 움직임을 우려하는 학생들의 반발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100주년 기념관 건물 앞에는 ‘학생 몰래 추진한 공학 전환 결사반대’ 등이 적힌 40여개의 근조화환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했다. 건물 외벽과 바닥 곳곳에도 페인트로 ‘우리는 여대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등의 항의 문구가 적혔다. 이날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총력대응위원회’는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에 △공학 전환 완전 철회 △총장 직선제 도입 △남자 유학생·학부생 정원에 대한 협의 등을 요구했다.
동덕여대 캠퍼스가 내홍에 휩싸인 건 학교 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직원이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실제 동덕여대 남성 재학생이 지난해 0명에서 2024년 6명(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정보공시)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학생들은 사실상 학교가 여대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고 여긴다. 조은서 동덕여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은 “동덕여대가 여성 학습 공동체로서 갖는 의미를 고려할 때, 공학 전환은 우리 학교가 지켜온 가치와 철학을 흔드는 사안”이라고 했다.
반면 동덕여대 쪽은 한겨레에 “대학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직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냈고 그때 나온 하나의 아이디어로 아직 결정된 사안이 아니다. 남학생은 한국어문화전공이 처음 생기며 정원 외 전형으로 외국인 남학생들이 입학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본관 앞에 학생들이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며 벗어 놓은 과 점퍼가 놓여있다. 이날 학생들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쪽에 공학 전환 완전 철회를 비롯해, 총장직선제 등을 촉구하며 수업 거부 및 시위 등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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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 학생들이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며 갖다 놓은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이날 학생들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쪽에 공학 전환 완전 철회를 비롯해, 총장직선제 등을 촉구하며 수업 거부 및 시위 등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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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낮 서울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돈암수정캠퍼스에 남성 입학을 반대한다는 항의 문구가 적혀 있다. 고나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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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 전환을 둘러싼 논란은 성신여대로도 번졌다. 내년 신설되는 성신여대 국제학부 외국인 특별전형 모집요강에 ‘모든 성별이 지원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기고, 2024년 남성 재학생 5명이 새로 등록한 사실이 알려진 영향이다. 성신여대 학생들도 이날 오전부터 캠퍼스에서 학교 점퍼를 늘어놓고 근조 화환을 설치하는 등 남녀공학 전환 반대 행동을 시작했다. 성신여대에서 만난 재학생 이아무개(22)씨는 “동덕여대 학생들 움직임에도 여성 혐오적인 반응이 계속 나오는데, 이러한 반응이 역설적이게도 혐오에서 자유로운 여대가 필요한 이유를 말해준다”고 했다. 다만 성신여대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남녀공학 전환은 전혀 추진된 바 없다. 이전에도 뷰티 관련 전공 등에서 외국인 남학생이 입학·편입학해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동덕여대 등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계기로 ‘여대’라는 공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여대는 당사자성을 가진 이들이 자신을 검열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성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곳”이라며 “애초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설립됐다면, 현재는 여전한 성별 격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하는 공간으로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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