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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노트북을 열며] 이재명의 늪, 탄핵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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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오현석 정치부 기자


“이재명 대표의 1심 재판이 나오면 괜찮아지지 않겠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출렁 내려앉을 때마다 여당 인사들, 특히 친윤계는 손가락을 들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가리켰다. 지난 5월 말 순직 해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뒤에도, 추석 직전 김건희 여사의 마포대교 사진으로 저점을 한 번 더 찍었을 때도 늘 비슷했다. ‘이재명 유죄’라는 심판의 날이 곧 올 테니, 그때까지 대통령을 엄호하며 야당과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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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9일 서울 도심 집회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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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과는 어땠나. 변화와 쇄신은 지체됐고, 대통령 지지율은 10%대로 주저앉았다. 대통령이 뒤늦게 고개를 숙였으나, 국민이 납득했는지 미지수다. 정적(政敵)의 사법리스크가 쇄신을 가로막는 역설. “여당이 이재명의 늪에 빠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반대로 민주당은 탄핵의 덫에 갇혔다. 명태균 녹취록에 지지층과 우당(友黨)에선 탄핵 요구가 빗발치는데, 일반 국민의 탄핵 여론은 달아오르지 않는다. 민주당이 주도한 지난 9일 집회의 참석 인원은 경찰 추산 1만5000명, 일주일 전보다 2000명 줄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통령 탄핵으로 이득을 볼 이 대표 주변에서 탄핵 얘기가 나오는 걸 국민 대다수가 마뜩잖아한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발을 뺄 수도 담글 수도 없는 상황. 자타공인 ‘사이다’ 이 대표마저 “제가 ‘두 글자’로 된 말을 차마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탄핵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면 더욱 난감하다. 탄핵소추엔 국회의원 200명이 필요한데 여당의 균열 조짐은 사그라들었다.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을 이끌 중대한 법률 위반도 8년 전보다 확실해 보이진 않는다. 20대 국회의원으로 탄핵 표결에 직접 참여했던 이철희 전 의원은 “이른바 ‘반윤 정서’는 크고 강하지만 이 정서가 탄핵 합의로 진화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진단했다(『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민심 변화에 누구보다 예민한 이 대표가 이런 계산을 못 했을 리 없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15일)과 위증교사(25일) 혐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여야는 각자 시원한 한판승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교착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비명계 관계자는 “두 재판 모두 유죄가 선고돼도, 최종심이 아닌 만큼 단기적으론 지지층이 결집해 이 대표 체제가 공고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 이후 2년 반 동안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극단적으로 대립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어쩌면 늪에 빠진 건 대한민국 국민일지 모른다.

오현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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