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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정재홍의 시선] 분배보다 성장 택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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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박빙이 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압승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높은 물가와 급증한 불법 이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조 바이든-카멀라 해리스 행정부를 심판했다. 공화당은 연방 상·하원에서도 과반에 성공해 이미 공화당 성향인 대법원과 함께 입법·사법·행정을 장악하게 됐다. 트럼프 2기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될 기반이 완성됐다.

미국 선거 결과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집권 세력 심판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안보와 경제 등에서 미국과 긴밀히 연결된 한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많은 난관에 부닥칠 전망이다. 미국 대선 결과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저성장에 시달리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트럼프 승리는 성장 모델의 승리

복지 앞세운 유럽은 부진 빠져

한국, 성장 담론 재건 절실해져

미국인들은 분배를 내세운 민주당이 아니라, 성장을 내세운 공화당을 선택했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미 대선 두 달 전인 지난 9월 4일 ‘트럼프가 어떻게 승리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인들이 민주당 모델보다 공화당 모델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플로리다·텍사스·아이다호·몬태나 등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주들은 대부분 공화당 주지사들이 재직하는 반면, 뉴욕·일리노이·캘리포니아·펜실베이니아·하와이 등 인구가 줄거나 정체된 주들은 민주당 주지사들이 맡고 있다. 공화당 주들은 낮은 주거 비용과 낮은 세금, 경제 활력이 특징이지만, 민주당 주들은 높은 주거 비용, 높은 세금, 불평등 심화 등을 겪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유럽식 복지제도 확대를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은 성장 활력을 잃고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졌다. 유럽연합(EU)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미국의 60%에 불과하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에 따르면 2022년 유럽 대기업의 투자는 미국 기업의 60% 수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럽 대기업들의 성장률은 미국의 3분의 2에 그쳤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은 자본 투자나 연구·개발, 생산성 향상에서 미국에 뒤처졌다. 한때 잘 나가던 독일 경제도 2018년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많은 미국 유권자가 유럽의 긴 휴가를 부러워하면서도 경제적 역동성을 더 원했다. 미 대선 결과를 결정한 7개 경합주 유권자들은 경제와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이슈라고 밝혔다. 그들은 경제 역동성과 성장을 창출하는 데 있어 공화당의 접근법을 선호했다.

민주당은 또 지배계급의 정당으로 인식됐다.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열은 대졸 여부이다. 대졸자 이상은 민주당에, 고졸 이하는 공화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고졸자는 대졸자보다 평균 9년 일찍 사망하고, 비만일 가능성이 더 높다. 결혼할 가능성이 훨씬 낮고, 이혼할 가능성은 더 높다. 고졸자의 약물 과다 복용 사망률은 대졸자보다 6배 높다. 더 나쁜 것은 교육받은 계층의 사람들이 불평등을 확대재생산 한다는 점이다. 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가정의 학생들은 연 소득 3만 달러 미만인 가정의 학생들보다 아이비리그에 입학할 확률이 77배나 높았다. 글로벌 포퓰리즘은 이런 종류의 불평등에 대한 반란이다. 교육받은 계층이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해리스와 같은 고등교육을 받은 민주당원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부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미국인이 민주당의 주장이 엘리트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사탕발림이라고 여긴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훨씬 나쁘다. 미국은 높은 성장률과 낮은 실업률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저출생률과 유례없는 고령화로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졸자와 고졸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미국보다 심각하다.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로 버티고 있으나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당선으로 험난한 4년이 예상된다. 정치권은 성장 동력을 되살릴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기초연금 확대 등 복지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 노동·교육·연금 등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함께 좌초할 위기다.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성장 담론 재건이 급선무다. 미국의 견고한 성장과 유럽의 장기 부진을 고려하면 미국식 성장 모델이 유럽식 복지 모델보다 우월하다 할 수 있다. 미국처럼 해고와 고용을 쉽게 하는 노동 유연화와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규제 완화 등으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의 재등장은 한국에 위기다. 그러나 위기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회로 탈바꿈할 수 있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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