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한파 없는 따뜻한 날씨, 가벼운 옷차림
부모 손잡고 온 수험생 "긴장만 하지 말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서 학부모가 수험생 아들의 볼을 어루만지며 응원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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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수험장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교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 도시락통 들고 씩씩하게 걸어가던 딸이 잠시 뒤를 돌아보자, 엄마는 미소와 함께 딸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쥔다.
"긴장하지 말고 파이팅! 이따 우리 웃는 얼굴로 보자."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시작된 14일 오전. 예전 같은 떠들썩한 응원전은 없었지만 부모와 선후배들의 따뜻한 격려에 수험생들은 숨을 고르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날 수능 한파(수능날에 날씨가 급작스럽게 얼어붙는 현상)는 없었고 서울 기준으로 아침 영상 13도의 포근한 가을 날씨가 이어졌다.
엄마와 셀카, 수험생 손에는 정성 담긴 도시락
이날 전국 85개 시험지구 1,282개 시험장에서 치러지는 수능에서 수험생들은 오전 8시 10분까지 지정된 시험실에 입실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고 앞에서 만난 수험생 박주영(18)군은 "날씨가 따뜻해 긴장이 풀렸다"며 "원래 하던 실력만큼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자녀를 응원하러 온 학부모들은 수험생보다 더 떨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일부는 승용차에서 내리는 아들에게 "파이팅"이라고 외쳤고, 시험장 앞까지 따라와 안아주며 격려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딸과 기념 '셀카'를 찍는 어머니도 있었다.
아들을 배웅하던 홍현진(50)씨는 "많이 떨던데, 떨지 말고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딸의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강민아(50)씨는 "새벽 4시에 미리 일어나서 5시 반에 아이를 깨웠다"며 "도시락을 두세 번 미리 싸봤는데, 맛있게 점심을 먹고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여고에서 만난 정대성(55)씨는 "첫 아이의 수능이라 그런지 제가 더 떨린다"며 "딸이 모의고사 치듯 긴장하지 말고 시험을 보면 좋겠다"고 했다.
선배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고사장 앞까지 응원나온 예비 수험생들도 있었다. 친한 형을 응원하러 왔다는 엄시원(15), 문석현(14)군은 "우리가 이렇게 온 만큼 꼭 서울대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이윤혁(11), 서유건(11)군은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반포고 시험장을 찾았는데, 플래카드에는 휴지 그림과 함께 '잘 찍고! 잘 풀고! 잘 붙어! 수능 대박 기원^^ 화이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양천구 금옥여고 시험장에서 만난 유경미(17), 이아란(17)양은 "미리 수능 기분을 느껴보려고 왔다"며 "정작 저희가 너무 떨려서 수시로 대학 가야 될 거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수능 이틀 전 암 판정... 병원에서 시험
13일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혈액암 진단으로 병원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 가은이(가명)를 응원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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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시험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특별한 수능'을 본 수험생도 있었다. 이날 서울성모병원에서는 혈액암 투병 중인 재수생 가은(가명)양이 교육당국과 의료진의 배려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가은양은 수능 불과 이틀 전 갑작스레 암 판정을 받았다. 기침이 멈추지 않아 대형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경남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양쪽 폐 사이 공간인 종격동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감염 위험 탓에 가은양에게 허용된 외출은 단 하루. 집으로 돌아가 지정 시험장에서 수능을 치르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외국어 특화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가은양의 오랜 꿈을 위해 의료진이 발벗고 나섰다. 교육청 협조로 병원에 시험장을 준비하고 치료 일정도 조정했다. 수능 전까지 최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도록 신경 썼다. 주치의인 민기준 가톨릭대 혈액내과 교수는 "시험 후 치료도 잘 마쳐 원하는 대학의 건강한 새내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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