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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248년 미국 민주주의의 명백한 자멸 징후들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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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월17일 미시간주 워터퍼드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문구가 새겨진 특유의 모자를 쓴 채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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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들은 미국의 짧은 역사를 얕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치 체제의 존속 기간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248년 된 미국의 민주공화정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길다. 미국 독립을 그냥 독립이라고만 하지 않고 독립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만큼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체제도 오래된 것이 먼저 무너지고 사라지는 게 순리일까?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248년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가 닥쳤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많은 표를 받았기에 당선됐지만 그의 불법행위, 선거운동 방식, 지지자들의 동기, 미국 정치의 방향을 고려하면 위기론이 충분히 커질 만하다.



트럼프의 집권 비결은 아돌프 히틀러를 닮은 데가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 혐오를, 트럼프도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를 적극 이용했다. 외부인들이 자신들 안방까지 모두 차지할 것이라는 망상에 가까운 선동으로 불안 심리를 자극한 것도 같다. 외부인들을 범죄자, 특히 성범죄자로 묘사하는 것은 언제나 집단 히스테리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이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체포됐으나 이게 오히려 그의 명성을 키워줬다. 트럼프도 ‘1·6 의사당 난동’이라는 내란이라고 볼 만한 사건을 선동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처벌 시도는 지지자들이 뭉치고 선거자금이 몰리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비서실장을 지낸 존 켈리는 그가 독일 장군들이 히틀러에게 보인 충성심을 부러워했다고 증언했다.



에리히 프롬은 나치즘의 부상 배경을 분석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당시 독일 중하류층이 주도한 국가주의적 분노는 “사회적 열등감을 국가적 열등감에 투영한 하나의 합리화였다”고 했다. 지금의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은 진단이다. 그들은 세계화·정보화에 대한 반감과 지위 하락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트럼프의 오른팔이 된 일론 머스크는 또 어떤가. 선거 때 하루 한명씩 추첨해 유권자들에게 100만달러(약 14억원)씩 뿌린 것은 기발하면서도 기괴하지 않은가. 고대 로마 정치인들이 민중의 환심을 사고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제공했다는 빵과 서커스가 비슷한 예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민주정치의 중우정치로의 타락을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민주주의 체제의 주권자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로 다시 세웠다는 점이다. 7500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함께 범인도피죄를 저지른 셈이다. 이러니 미국 민주주의가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폭주에 “누구도 법 위에 없다”거나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를 다른 말로는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로 공화당 쪽은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차지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대법관을 3명이나 지명했기 때문에 보수-진보가 6 대 3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특정 세력이 입법·사법·행정 권력을 사실상 모두 장악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생겼고 견제와 균형은 무너졌다.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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