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월1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필리핀, 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 아세안 +3 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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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정 l 논설위원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이후 많은 이에게 각인된 것은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뚜렷한 권력관계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뭘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김 여사가 ‘사과 좀 많이 하라’고 했다며 “어찌 됐든 사과”한다고 했다. 김 여사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열어보고 심지어 ‘사칭’ 메시지까지 보냈다는데, 윤 대통령은 아내의 부적절한 소통에도 ‘감히’ 휴대전화를 보자고도 못 했다. 김 여사의 조언은 육영수 여사 반열에 올려놓았고,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라며 사실상 국정 파트너라는 점도 내비쳤다. 아무리 국민이 총선으로 심판하고 지지율로 경고를 보내도, ‘순진한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의 굳건한 성역이라는 점만 재확인됐다. 이는 윤 대통령 스스로의 판단으로 김 여사 문제 해법을 결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민 앞에 고개 숙이며 “제 불찰” “부덕의 소치” “부족함”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형식만 사과였을 뿐 실제 내용은 김 여사를 위한 반박으로 채워졌다. “(대통령이)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먹고 원만하게 하길 바라는 걸 국정농단이라고 하면 국어사전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당신 부드럽게 해” 정도의 조언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윤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김 여사에게 제기된 공천 개입, 대통령실 비선 논란 등을 “침소봉대” “악마화”라고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유일하게 인정한 김 여사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은 “휴대전화를 바꾸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고, 후속 조처로는 “앞으로 부부싸움을 좀 해야 할 것 같다”는 답으로 이어졌다. 또 김 여사가 “사과 좀 제대로 해”라고 이야기했다며 대국민 사과의 배경에 김 여사의 훈수가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 여사 문제 해법을 내놓았어야 할 기자회견마저 김 여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면, 애초부터 대책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기껏해야 김 여사 대외활동 일시 중단, 윤 대통령 부부 휴대전화 교체, 제2부속실 설치 정도가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김 여사의 국정개입 통로로 의심받는 대통령실 인사들의 거취 역시 만취 운전으로 뒤늦게 징계받은 행정관의 퇴직과 전임 비서관의 공공기관장 지원 철회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인사 조처를 인적 쇄신으로 과대 포장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명태균씨의 각종 소통을 “몇차례 문자나 이런 걸 했다” “일상적인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공식 해명을 뒤집는 정황은 연일 폭로되고 있다. 검찰은 김 여사가 명태균씨에게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명씨도 시기·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돈봉투를 받은 사실은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씨가 2022년 6월13일 김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당시 케이티엑스(KTX) 대통령 특별열차에 탑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여사와 명씨의 딸이 영상 통화를 할 정도로 양쪽이 돈독한 관계라는 증언도 있다. 김 여사를 감싸려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며 국민 불신을 자초하는 형국이다. 올 초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당시 윤 대통령 주변에서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김 여사의 거센 반발에 막혔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피력했다고 한다.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고 4대 개혁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조바심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지지율 17%(한국갤럽 11월 첫째 주 조사)의 대통령이 이를 밀고 나갈 동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 핵심엔 부정평가 이유 부동의 1위인 김 여사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각종 의혹을 해소할 ‘김건희 특검법’ 수용 없이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윤 대통령 부부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시각이 많다. 김 여사는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허위 이력 등이 불거지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남편이 저 때문에 너무 어려운 입장이 돼 너무 괴롭다”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그때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윤 대통령의 ‘사랑꾼’ 면모는 이미 온 나라가 다 안다. 이제는 김 여사가 남편을 위해 ‘특검법 수용’을 자청할 때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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