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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전태일의 가장 행복한 순간, 3.8평 대구 옛집 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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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3일 저녁 대구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전태일 옛집’ 개관 기념식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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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저녁 6시, 대구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는 흥겨운 풍물패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풍물패는 골목을 한 바퀴 돌아 “주인 나오시오” 하고 소리한 뒤 집으로 들어왔다. 무릎 높이만큼 오는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담장에는 ‘전태일’이라고 적힌 문패가 달렸다. 이곳은 전태일 열사가 여섯 가족과 함께 1962년 8월부터 1964년 2월까지 살던 집이다.



전 열사가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록했던 대구 옛집이 54주기인 지난 13일 문을 열었다.



전 열사는 이 집에서 12.5㎡(약 3.8평) 크기의 셋방에 살았다. 이곳에서 살며 집 근처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 자리)를 다니며 공부했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했다. 현재 셋방은 허물어지고 없지만, 그 터에는 ‘열여섯 태일의 꿈’이라는 이름의 작은 의자가 놓였다.



“너무 가슴이 벅찹니다. 이 공간을 보니 온 가족이 다시 모인 것 같아요.”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의원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 어둠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 많은 시민이 이곳에서 오빠 전태일을 만나고, 엄마 이소선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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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저녁 대구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전태일 옛집’ 개관 기념식에 시민들이 쓴 방명록 엽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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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열사의 은사인 이희규 전 청옥고등공민학교 교사는 “당시 어려운 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쳤는데, 전태일군은 1년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했다”고 전 열사를 떠올렸다. 그는 “22살 어린 나이에 모든 사람을 대신해 자신을 희생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말을 남겼는데, 오늘 이 자리에 많이 모여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살던 본채는 기념관으로 꾸며졌다. 전태일 열사, 이소선 여사,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의 생애 등을 볼 수 있다. 또 누구나 강연이나 소모임 등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 집의 존재는 2015년 유족의 증언으로 처음 알려졌다. 열사의 삶의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시민사회는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2019년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을 꾸리고, 올해까지 3천여명의 시민이 8억원을 후원해 집 매매 대금과 복원 공사 비용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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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저녁 대구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전태일 옛집’에서 시민들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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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박정희의 도시가 아닌 전태일의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꿈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이승렬 전 영남대 교수회 의장은 후원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이 땅에 기본적인 인권을 되살리고, 우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리려고 했던 열사의 마음을 다시 새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제자들과 함께 뜻을 모아 후원한 신명여중 교사 박재두씨는 “그가 바란 세상은 특별한 이들이 만드는 세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송필경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은 “전태일과 함께하고자 한 수많은 시민의 뜻이 모여 옛집을 복원할 수 있었다”며 “전태일은 이곳에서 희망과 꿈을 키우고 서울로 갔다. 민주화와 노동해방을 위해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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