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고부면 보건지소 임경수 소장이 7일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에서 열린 ‘국민건강의 미래, 시니어 의사와 함께 논하다’ 심포지엄에서 의료 취약지역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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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료의 현실은 정말 처참하다. 아프리카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제발 이곳에 한 번씩 와서 눈으로 직접 봐주면 좋겠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달 7일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에서 ‘국민건강의 미래, 시니어 의사와 함께 논하다’를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 보건지소 임경수 소장(67)은 이 자리에서 “국내 의료 취약지역의 의료 수준이 1970, 80년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심각성을 전했다.
임 소장은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한 뒤 2022년 정읍아산병원장을 지낸 응급의학과 베테랑이다. 그는 정읍아산병원장을 마친 후 더 좋은 제안을 뿌리치고 대표적 의료취약지인 정읍시 고부면 보건지소 소장이 됐다.
서울보다 큰 정읍시에는 보건지소 15곳이 있는데 공중보건의사(공보의)는 9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의료공백 사태로 3명이 차출돼 다른 지역으로 가고 현재는 공보의 6명만 남은 상태다.
임 소장은 “시니어 의사로서 의료 취약지 주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보건지소장을 택했지만 현실적 벽은 높았다”고 돌이켰다. 먼저 보건지소는 임 소장에게 월급을 줄 법적인 근거가 없었다.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공보의는 국방부에서 월급을 받는다. 반면 시니어 의사가 보건지소에 일할 경우에는 국방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월급을 주지 않는다. 임 소장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기 위해 정읍시장에게 찾아가 주 4일, 하루 7시간씩 일하는 조건으로 연봉 40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임 소장은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이고 여성이 많다. 버스도 하루에 4번밖에 오지 않는 곳이라 주민들이 대중교통으로 병의원을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며 “고혈압, 당뇨병 등 치료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예방적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국내 의사의 평균 연령은 51세로 12년 전(47세)에 비해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특히 필수과 및 공공의료 분야에서 고령화가 특히 심하다. 여기에 더 이상 진료를 하지 않는 비활동의사가 전체 의사의 7.8%를 차지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 부족으로 갈수록 더 많은 의료취약지가 생기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의료 취약지역은 전국 259개 시군구 중 98곳이며 분만 취약지역은 72곳이다. 이런 취약지역에서 55세 이상으로 풍부한 임상경험과 의학지식을 지닌 시니어 의사들이 활약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니어 의사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거의 없다 보니 의지만으로 의료 취약지를 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정부에서도 최근 임 소장 같은 시니어 의사를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은 시니어의사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시니어 의사가 의료 취약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채용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시니어 의사 인력 매칭 홈페이지인 닥터링크도 조만간 개설한다. 닥터링크를 통해 교육, 등록, 매칭, 채용 등을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10년 이상 근무한 55세 이상만 지원할 수 있고 채용지원금 예산 규모도 현재 12억 원 정도로 많지 않다. 오영아 시니어의사지원센터장은 “지역의료기관에서 필요한 시니어 의사 수를 조사한 결과 공공보건의료기관 및 수련병원 103곳에서 724명의 의사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특히 내과가 218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상의학과(67명), 소아청소년과(53명), 마취통증의학과(51명), 외과(49명), 응급의학과(41명) 순이었다”고 했다.
박재현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조사해 보면 상당수 의사들은 은퇴 후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한다. 또 급여가 좀 줄어도 여가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한다”며 “다만 가족과 떨어져야 하고 지역 인프라가 열악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시니어 의사가 의료 취약지로 향하게 하려면 사람을 좋아하는 의사를 파악해야 하고, 선후배끼리 모여 회포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해 주는 환경도 필요하다. 임 소장은 “귀촌 생활과 봉사를 하면서 같이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 12명이 있다 보니 행복할 따름”이라면서도 “정부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1차 의료 전달체계를 복원할 방안을 더 고민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뜻이 있는 시니어 의사들을 의료 취약지로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고민과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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