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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산따라 강따라 비경들 사이사이 비밀의 역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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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의 상징인 옥녀봉 그리팅맨. 2016년 유영호 작가가 설치한 작품으로, 자존심을 지키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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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은 경기도이긴 하나 멀다. 서울시청에서 연천군청까지는 약 83㎞. 인구(4만950명)는 경기도에서 가장 적고, 지방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이런 조건은 걷기여행을 할 때 도리어 장점이 된다. 지난 6~7일 ‘DMZ 평화의 길’ 연천 구간을 걸어보니 고요히 만추를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임진강 너머 북녘땅이 아른거렸고 이따금 우리 군의 사격 소리가 들렸지만, 풍경만큼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천혜의 요새 당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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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로 지정된 임진강 주상절리. 25m 높이의 절벽이 약 2㎞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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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은 35개 코스 510㎞ 길이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인천 강화군부터 강원도 고성군까지 10개 기초 자치단체를 지난다. 연천 구간이 4개 코스(11~14코스) 64.4㎞ 길이로 경기도에서 가장 길다. 연천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12, 13코스다. 문화 유적이 다양하고 자연 풍광이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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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12코스 시점인 숭의전을 찾은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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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코스는 숭의전지에서 시작한다. 숭의전은 고려 임금 4명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조선 시대 사당이다. 사당을 짓기 전에는 태조 왕건이 자주 들러 기도했던 앙암사가 있었다. 이른 아침 걷기여행자 8명이 숭의전을 찾았다. 동호회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을 운영하는 이의선(79)씨는 “이달 안에 강원도 고성까지 횡단을 마치는 게 목표”라며 “평화의 길은 해파랑길, 남파랑길보다 풍경은 못하지만 접경지를 걷는 의미가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숭의전에서 2.2㎞를 걸으면 고구려가 만든 천연 요새 당포성이 나온다. 주상절리 절벽 위에 삼각형 모양의 대지가 형성돼 있어 동쪽에만 돌을 쌓아 성을 완성했다. 요즘 당포성은 별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다. 지난 9월 말에는 별 보기 체험, 야외 공연을 곁들인 ‘연천 당포성 별빛축제’가 열렸다.

인공 운하 같은 주상절리

당포성을 나와 남동쪽으로 이어진 마동로를 따른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차로를 따라 걸어야 해서 주의가 필요하다. 당포성에서 약 1㎞를 걸으면 유엔군 화장장이 보인다. 1993년 발견된 뒤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됐다.

화장장 면적은 1596㎡. 건물 대부분이 훼손됐지만 큼직한 굴뚝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발견 당시 마을 주민의 구술을 바탕으로 화장장의 존재를 확인했다. 야트막한 산어귀에서 연기가 자주 피어올랐고 그때마다 구슬픈 나팔 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전쟁이 교착 상태였던 1952년 한탄강, 임진강 일원에서는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알 수 없지만, 16개 전투부대 파견국이 모두 연천에서 싸웠다.

화장장에서 약 2㎞를 걸으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임진강 주상절리가 나온다. 25m 높이의 절벽이 약 2㎞ 뻗어 있는 모습이 인공 운하 같다. 연천군 송중섭(68) 한탄강지질공원 해설사는 “27만년 전 화산 폭발 당시 용암이 쌓인 뒤 강물의 침식으로 생겨난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가을에는 돌단풍이 절벽을 붉게 물들인다. 해 방향 때문에 오후 3~5시 방문해야 장관을 볼 수 있다.

임진강 윤슬 눈부신 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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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13코스는 100~200m 높이 산자락을 걷는다. 개안마루 전망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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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코스 종점이자 13코스 시작점은 군남댐 인근 두루미 테마파크다. 실물 크기의 두루미 모형이 전시된 작은 공원이다. 진짜 두루미를 보려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 이달 말께 시베리아에서 두루미 1000여 마리가 날아와 임진강 여울에서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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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코스 시작점인 두루미 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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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에 이르는 12코스는 완만한 평지에 가깝다. 13코스는 다르다. 길이가 19.8㎞에 이르고 해발 100~200m 산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가파른 경사가 부담스러우면 대광리역에서 군남댐 방향으로 걷는 게 낫다. 두루미 테마파크에서 미라클 타운까지 이어지는 약 6㎞ 길은 걷는 맛이 남다르다. 산길인데도 율무밭과 콩밭이 많아 시야가 확 트인다. 윤슬 반짝이는 임진강이 내내 아른거린다. 올해 4월 완공한 O자형 개안마루 전망대에 서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강과 북한 쪽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13코스를 걷는다면 코스를 살짝 벗어나 옥녀봉(205m) 정상에 올라보자. 2016년 유영호 조각가가 설치한 ‘그리팅맨’이 기다린다. 10.8m 높이의 조각상이 북한 마량산 방향으로 허리를 15도 숙여 인사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설치한 뒤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주말은 상관없지만 평일에는 옥녀봉 오르는 길이 자주 통제된다. 군부대 사격 연습 때문이다. 지난 6일에도 오후 내내 총소리가 울리다가 5시께나 길이 열렸다. 덕분에 황홀한 석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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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여행정보=12코스 숭의전 인근 ‘새둥지마을’이 DMZ 평화쉼터로 지정돼 있다. 걷기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갖췄다. 13코스 미라클 타운 인근에 자리한 평화누리길 어울림센터도 평화 쉼터다. 화장실·휴게실을 이용하고 기념품도 살 수 있다. 큰 숙소를 찾는다면 백학자유로리조트를 추천한다. ㈔길만사에서 연천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달 17일 14코스, 24일 13코스, 12월 1일 12코스를 걷는다. 서울(합정역)~일산~연천 버스 이동과 점심 포함한 참가비는 3만원. 두루누비 앱이나 홈페이지 참조.

연천=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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