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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사설] ‘주주 충실’ 상법은 부작용 우려, 소액주주 위한 다른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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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민주당이 14일 의원총회를 열고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주최 '개미투자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토론 장면.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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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기업 이사가 ‘주주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현행 상법 382조의 3은 ‘이사는 (중략)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대신 ‘주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주주 충실 의무’ 상법 개정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처음 언급한 사안으로, 법무부는 부정적이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이슈를 민주당이 당론화한 것이다.

1400만 소액주주들은 ‘주주 충실 의무’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배당이나 인수·합병, 분할 상장 등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이 철저히 대주주 이익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누적돼 왔기 때문이다. 카카오그룹의 자회사 분할 상장,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 쪼개기 상장이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이후, 일방적 쪼개기 상장을 막을 장치로 ‘주주 충실 의무’를 법제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올해 들어서도 고려아연 일방적 유상증자 결정 등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기업의 의사 결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법에 ‘주주 충실 의무’를 못 박는 것은 부작용이 클 수 있다. 기업 주주에는 외국인, 기관, 사모펀드, 소액주주 등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주주가 있다. 이사회가 이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키긴 어렵다. 의사 결정 때마다 주주 소송이 제기되고, 행동주의 펀드, 기업 사냥꾼에게 경영권 개입의 빌미를 제공하는 격이 될 수 있다. 신주 발행이나 전환사채 발행처럼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위한 결정에 차질을 빚을 우려도 있다. 기업 분할, 인수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 이익을 보호할 목적이면 꼭 상법이 아니어도 된다. 투자자 보호가 주목적인 자본시장법에 구체적인 적용 범위를 적시하고 소액주주 보호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도 있다.

상법에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넣으려면 동시에 기업 측에도 경영권 방어 장치를 제공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외부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때, 대주주에게 싼 가격에 신주를 발행하는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특정 주주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지분율에 상관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같은 제도를 함께 도입해야 균형이 맞을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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