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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수능 지문 속 링크 주소 들어가 보니, 尹 퇴진 집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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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40~43번 문항 지문을 정치 목적으로 악용… 평가원, 수사 의뢰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14일 치러진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험지에 나온 인터넷 주소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규탄하는 집회 안내문이 게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수능 문제와 관련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인터넷 주소는 이날 오전 8시 40분부터 10시까지 치러진 수능 국어 영역 ‘언어와 매체’ 과목 40~43번 문항의 관련 지문에 등장했다. 이 지문은 가상의 인터넷 방송 채널을 운영하는 ‘푸근’이 공학 박사 ‘전선’을 초대해 플러그와 콘센트와 관련한 일종의 온라인 강의를 하는 내용이다. 시청자들에게 ‘플러그와 콘센트의 발명과 변화 과정’ 강의 자료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주소를 알려주는 내용이 지문에 포함됐다.

논란은 국어 영역 문제지가 온라인에 공개된 다음 불거졌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시험이 끝날 때마다 영역별 문제지와 답지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다. 국어 영역 문제지는 10시 56분쯤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문제지에 있는 해당 인터넷 주소가 ‘하이퍼링크(클릭했을 때 해당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기능)’ 설정이 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직접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해 보니 시험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웹사이트가 열린 것이다.

웹사이트에는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 행동의 날’이라는 문구가 나왔다. 오는 16일 오후 4시 30분 서울 광화문 앞 대로에서 열린다고 일정과 장소도 공지돼 있다. 이는 민주당이 주최하는 실제 진행될 예정인 집회다.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등 야당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수능 국어 문제에 야당 집회를 홍보하는 웹사이트 주소가 실린 셈이다.

평가원 측은 “출제 당시 확인했을 때는 웹사이트 주소를 입력하면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음’이라는 문구가 뜨는 존재하지 않는 웹사이트였다”면서 “누군가 문제지가 온라인에 공개된 후 악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경찰에 수사 의뢰해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실제 이날 오후 2시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는 한 네티즌이 ‘2025 수능 국어 지문에 나온 도메인 먹음 ㅋㅋ’이라는 글과 함께 해당 수능 지문과 집회 홍보 문구가 있는 웹사이트를 캡처해 올리기도 했다. 이 글은 삽시간에 퍼져 나가 조회 수 100만을 넘어섰다.

평가원은 또 이날 입장문에서 “모든 국민의 관심사인 수능의 출제 문항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교육적인 목적으로 대외 공개한 출제 문항을 정치적 목적으로 임의 사용한 것에 대해 수사 결과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능 문제지에 특정 인터넷 주소를 넣으면서, 이를 미리 구입하지 않은 것은 평가원 측 실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처럼 누군가 인터넷 주소를 뒤늦게 구입해 이상한 내용을 게시한다고 해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지는 해당 연도 수험생뿐 아니라 많은 학생이 참고하는 자료다. 소셜미디어에는 “수능 문제에 인터넷 주소를 올리면서 미리 안 산 것도 충격” “누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음란물을 올렸으면 수능 문제에 평생 음란물 사이트 주소가 박제되는 것 아니냐” 등 반응이 나왔다.

평가원 의뢰를 받고 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시험지에 있던 인터넷 주소는 원래 소유자가 없던 도메인으로, 이를 누군가 오늘 구입해 (집회) 문구가 나오도록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킹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며 “추후 자세한 진상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불상의 인물에게 적용할 혐의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가 주인 없는 인터넷 주소를 선점했을 뿐, 평가원이 보유한 웹사이트를 해킹(정보통신망법 위반 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행위를 한 이가 현직 교사 등 공무원일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수능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 학생들이 접속할 수 있는 웹사이트에서 집회 참여를 독려한 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배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평가원 관계자는 “적용할 수 있는 혐의에 대해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해당 웹사이트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관계없는 개인이 운영하는 페이지’라는 문구가 추가됐다가, 이날 저녁쯤 사이트가 아예 폐쇄됐다. 평가원은 이날 밤 홈페이지에 공개된 문제지에 있는 이 인터넷 주소를 수정했다. 자신들이 뒤늦게 구입한 다른 인터넷 주소로 바꾼 것이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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