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가문 “외국 기업엔 못 넘긴다”
1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븐앤아이홀딩스 창업 가문의 자산 관리 회사인 이토흥업이 이 회사에 경영자 인수(MBO·Management Buyout)를 제안했다. 주도하는 인물은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창업자 고(故) 이토 마사토시의 둘째 아들 이토 준로 부사장이다. 경영자 인수는 회사의 경영진이 외부의 간섭을 줄이려는 의도로 회사 지분을 매수해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지분 8%를 보유한 창업 가문의 이토흥업은 공개 매수 방식으로 나머지 92%를 전량 인수해 비상장사로 전환하겠다고 제안했다. 매수 금액은 7조엔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래픽=양진경 |
창업 가문이 등장한 이유는 캐나다의 ACT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ACT는 지난 7월 세븐앤아이에 6조엔의 인수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했다. 지난 9월 다시 인수 가격을 7조엔으로 높였으나, 세븐앤아이는 ‘독자 경영으로 2030년까지 매출을 30조엔까지 늘리겠다’며 재차 거절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인수 제안을 거부당한 ACT가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며 “주주 가운데는 (외국) 펀드가 적지 않아 세븐앤아이홀딩스로선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쿠시타르, 서클K와 같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ACT는 미국, 스웨덴 등 30국에서 1만700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편의점 시장의 점유율은 3.8%(점포수 기준)으로, 미국에서도 8.5%로 1위인 세븐앤아이에 이은 2위다. ACT가 인수에 성공하면 미국 1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점포 수 10만 개의 ‘메가 편의점 체인’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ACT는 2004년 이후로 74건에 달하는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며 급성장한 유통 기업이다.
세븐앤아이의 창업 가문은 ACT와 비슷하거나 좀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일본 언론에선 “7조엔보다 많은 9조엔대의 인수 규모를 제시했다는 설(說)도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창업 가문의 자산 관리 회사 이토흥업은 MUFJ, 미즈호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일본 시중은행 3곳에 대규모 융자를 요청했다. 여기에 일본 2위 편의점인 패밀리마트를 운영하는 이토추상사에는 인수 참여를 요청했다.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가 자본으로 이어지면 일본 편의점 점포의 60%를 가진 거대 체인이 될 전망이다. 독과점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조엔대에 달하는 자금을 창업 가문 측에서 마련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투자 업계의 반응”이라고 보도했다.
매각을 결정할 세븐앤아이의 특별위원회는 “창업 가문과 캐나다 ACT의 제안은 물론이고, 매각 없는 독자 성장 전략 등을 모두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창업 가문이 ACT와 같은 금액을 써냈다고 무조건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이토 준로 부사장이 세븐앤아이의 경영진 중 한 명이긴 하지만, 최고경영자(CEO)는 아니다.
본래 미국 회사였던 세븐일레븐에서 일본 라이선스를 가져와, 1974년 도쿄에 점포를 연 인물이 이토 부사장의 아버지인 이토 마사토시 전 회장이다. 1991년에는 세븐앤아이홀딩스가 미국 세븐일레븐을 인수했다. 하지만 1992년 이토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2002년 장남인 이토 야스히사 전무는 회사를 떠났고 차남인 이토 준로도 경영에서 사실상 배제됐다가 2016년에야 주요 경영진의 한 명으로 복귀했다. 세븐앤아이의 특별위원회를 좌우할 힘은 없는 것이다. 이토 준로 부사장은 현재 매각 관련한 경영 판단에선 배제된 상태다.
현재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주요 주주는 자산 관리 전문 신탁은행인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14.7%)과 일본카스터디은행(5%), 스테이트스트리트뱅크앤트러스트(2.8%) 등이다. 실제 주식 소유주의 상당수가 외국 펀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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